굴곡진 국정감사 역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시작 경제발전 목표로 박정희 대통령이 삭제 국민투표로 1988년 10월 4일 재개 삼청교육대 등 5共 비리 집중 감사

여당 - 대통령 연결고리 끊기 쉽지않아 연례행사 인식 불성실 태도 비일비재 실효성 논란 불구 상징성 무시못해

지난 1988년 10월 4일, 제5공화국의 비리를 밝히는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1972년 유신헌법에서 국정감사권이 삭제된 이후 무려 16년 만에 재개된 국정감사였다. 국정감사 재개의 배경엔 1987년 6월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친 시민들의 6ㆍ10항쟁이 있었다. 시민들의 저항에 굴복한 당시 집권정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골자로 한 6ㆍ29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이 개정, 국정감사권이 부활했다.

이후 국회는 일해재단,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소값파동 등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를 비롯해 삼청교육대의 인권유린, 박종철 고문치사 및 은폐조작사건 등 제5공화국 시절의 수많은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전경환을 비롯한 전두환 대통령의 친ㆍ인척 10명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 이학봉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 제5공화국 시절 쟁쟁한 인사들이 줄줄이 영어의 신세로 전락했다. 어렵게 제자리로 방향을 돌려놓은 민주주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함께한 국정감사=국정감사권은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를 비롯한 여타 국가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권한을 의미하며, 그 권한은 헌법으로부터 나온다. 국정 전반을 견제하는 막강한 권한인 만큼, 국정감사는 정부의 성격에 따라 질곡의 역사를 겪어야만 했다.

국정감사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시작됐다. 제헌헌법(1948년 7월 17일 제정)에 처음으로 규정된 국정감사는 이후 제1차 발췌개헌(1952년 7월 7일)부터 제6차 3선개헌(1969년 10월 21일)까지 이어지다 제7차 유신개헌(1972년 10월 17일)에서 폐지됐다. 경제발전을 목표로 집권 이후 행정부의 기능을 강화하는 국정 운영을 강조하며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켰던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개헌을 통해 명문으로나마 남아있던 견제수단마저 삭제했다. 박 대통령 서거 후 집권한 신군부는 제8차 개헌(1980년 10월 12일)을 통해 정치권을 향한 유화책으로 국회가 특정 사안을 조사할 수 있는 국정조사권을 도입했다. 그러나 국정조사권의 범위는 국정감사권에 비해 한정적이다. 현행 헌법은 국정감사권을 부활시켜 입법부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1972년 유신헌법서 삭제…‘6 · 10항쟁’ 거쳐 이듬해 16년만에 쟁취

▶현행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국정감사=헌법 제61조 제1항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 명문화돼 있다. 헌법 제61조 제2항의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이란 부속법령이 마련돼 있다.

국회는 국정 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대상기관은 국가기관, 특별시ㆍ광역시ㆍ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그리고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감사원의 감사 대상기관(동법 제7조)이다. 국정감사의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 위원회에 관련서류 제출 요구, 증인 감정인 참고인의 출석요구, 검증, 청문회의 개최 등의 권한이 부여돼 있으며 누구든지 이에 협조해야 한다(동법 제10조 제4항).

이 같은 법령에 근거해 올해 국회는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20일간 국정감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탄핵사유나 위법사유가 발견될 경우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탄핵소추 혹은 해임결의가 가능하다. 행정부는 국회에서 이송한 결과보고서 사항을 처리한 뒤 그 결과를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따라서 국정감사는 ‘의정활동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실효성 논란 불구하고 상징성 만만치 않아=국정감사는 대체로 정부의 비리와 의혹의 진상을 국회 차원에서 규명하기 위해 실시된다. 행정부를 견제하려면 입법부의 독립성 확보가 우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여당과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연결고리를 끊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주로 야당이고, 여당은 정부를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여당이 야당의 증인 신청과 참고인 채택을 거부해 국정감사의 김을 빼는 경우도 다반사다. 또한 국정감사가 매년 20일간 벌어지는 ‘연례행사’이다 보니 기관장들 역시 출석과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며 ‘어떻게든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잦다.

이 같은 상황이 매년 도돌이표처럼 벌어지다 보니 국정감사 무용론이 불거지기 일쑤다. 그러나 국정 전반에 대해 성역 없는 감시와 비판을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 또한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국정감사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금처럼 감사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고 국회가 필요하면 언제든 행정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질의를 할 수 있는 이른바 상시국감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해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