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ㆍ신대원ㆍ원호연 기자]서유럽 순방으로 사실상 취임 첫 해 해외농사를 거의 마무리지은 박근혜 대통령이 3각 트라이앵글의 덫에 빠졌다. 이번 순방에서 5%포인트 지지율 상승이라는 덤까찌 챙긴 박 대통령은 이번주 ‘대북(對北)-대일(對日)-대야(對野)’의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대한 박 대통령의 시각이 변하지 않은데다, 이들 3각 트라이앵글 곳곳엔 폭발력 있는 이슈들이 도사리고 있어 되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검에 신(新)야권연대까지...험난한 일주일=순방 중 정부의 통진당 해산 청구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었지만 야권의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특검 요구는 박 대통령이 넘어야 할 산이다. 분수령은 18일로 예정된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11일 상임위를 전면 보이콧하기로 한데다, ‘국가기관 선거 개입 진상 규명과 민주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도 12일 출범한다. 지난 총선 당시 야권연대의 구심축이 모두 참여한데다, 무게감에서나 상징성에서나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앞서는 안철수 의원까지 가세했다. 게다가 신(新)야권연대는 그 타깃을 박 대통령이 순방에 앞서 “사법적 판단이 먼저”라며 털고 가려 했던 선거개입 의혹 문제다. 박 대통령이 ‘정치공세’라며 교통정리를 하려 했던 특검은 특히 내년 예산안과 주요 민생법안 처리와 연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안 의원은 최근 정치세력화를 구체화하며 제3당 창당에 불씨를 당기고 있다.
청와대에선 이와관련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신야권연대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사법적 판단의 문제”를 정치 세력화로 풀려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시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여권 한 관계자는 “지난 10ㆍ30 재보선 선거에서 큰 표차로 이기면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마이웨이식 정국 운영’에 자신감을 갖은 것 같다”며 “당분간 이로 인해 오히려 (박 대통령) 자신이 정한 원칙을 끝까지 밀고 갈 가능성이 높아져 연말까지도 내내 정치현안은 실마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첫 고위급회담...돌파구는 글쎄=한일 양국은 11일 도쿄에서 차관보급 고위경제협의회를 연다. 양국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역사인식 문제로 촉발된 정치ㆍ외교 갈등이 경제협력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물밑 접촉이다. 하지만 강제징용 배상문제와 방사능 오염수 유출로 인한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등은 ‘치킨게임’ 양상을 벌이고 있는 한일관계에 되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 해제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이번 회의에 일본 재계와 강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는 경제산업성 관료들이 참여하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 사법부의 징용배상 판결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게이단렌(經團連) 등 일본 경제 3단체의 주장을 들어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모든 배상책임이 소멸됐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급한 불을 끄려고 했다가 오히려 불길만 더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 “그동안 각 개별사안에서 전달한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며 “징용배상과 관련해선 잘못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수산물 금수 조치 역시 우리 국민의 우려 해소를 위한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조치로 해제되려면 수산물 안전을 확신할 만한 원전 상황 진전 등에 대한 조치를 일본이 먼저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6자회담...빈수레?=최근 3주간 긴박하게 돌아간 6자회담도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태용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 주 중반 중국을 방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 사무특별대표를 만난다. 이로써 ‘미ㆍ중→한ㆍ미→중ㆍ북’으로 이어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각개전투가 일단락 된다. 특히 우 대표는 최근 나흘동안이나 북한에 머물면서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놓고 북중간 집중 협의도 마쳤다. 우 대표가 방북 기간 판문점을 방문한 것도 이례적인 행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우 대표가 판문점을 방문한 것은 북한에 한반도 긴장완화 필요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이날(11일) ‘우리에게서 그 어떤 사전조치가 먼저 취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며 선비핵화 조치를 다시 한 번 강하게 부정한 것만 봐도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오는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ㆍ러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날 회담에서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주요 의제로 논의된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구체적인 의제로 거론되는 남-북-러 전력수송이나 철도 연결 모두 북한의 ‘진정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달 중순에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간 한ㆍ중외교안보 전략대화가 예정돼 있고, 미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이달 하순 한ㆍ중ㆍ일 3국을 순방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일정을 조율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6자회담 재개 방안을 비롯한 북핵문제가 연쇄적으로 집중 논의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