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위무게당 가장 많은 칼로리를 내는 지방은 격렬한 육체노동과 함께 식사시간이 길지 않았던 노동자에게 유용한 에너지원이었다. 하지만 먹거리가 풍족해진 지금은 비만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꺼리는 영양소가 됐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도 현대인의 체중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움을 산다. 그렇다면 지방·설탕·소금은 인류를 비대하게 하는 원흉일까.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UCL)병원의 크리스 반 툴레켄 전문의는 신간 ‘초가공식품,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에서 우리가 지방, 설탕, 소금 등에 과도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요소들은 건강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거나 심혈관질환, 암, 치매 등 치명적인 질환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문명병이라 할 만한 이러한 질환의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초가공식품’이다. 초가공식품은 채소, 고기, 과일 등 자연적인 식품과 이를 물리적으로 변형한 가공식품 외의 식품을 말한다. 즉, 단 하나라도 우리 부엌에서 볼 수 없는 성분이 들어 있다면 그 음식은 초가공식품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식품에는 변성 전분, 대두 레시틴, 산도조절제, 구아검, 말토덱스트린 등의 성분이 들어 있다.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해로운 이유는 이 음식 자체에 지방 비중이 높거나 설탕, 소금 등이 많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다. 가공 방식 자체가 문제다. 앞서 언급했던 첨가제들은 전분, 대두 등을 변성시키거나 압축하는 등 산업적으로 화학구조 자체를 변화시켜 만든다. 이들의 역할은 자연 재료의 맛과 질감을 구현하는 데 쓰인다. 첨가제만 넣으면 아무 맛 없던 음식에 계란, 버터, 우유 등이 들어간 음식처럼 맛과 질감을 갖게 된다. 덕분에 식품회사들은 제품 원가를 낮추고, 유통기한은 늘려 대규모 유통을 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섬유구조가 완전히 파괴된 음식들은 부드럽고 씹기 편하다. 덕분에 음식을 더 빨리, 많이 먹을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초가공식품은 필연적으로 과식을 부를 수밖에 없다. 초가공식품은 또 식욕호르몬에도 영향을 줬다. 포만감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은 배부르게 식사를 한 후에도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반면 배고픔 호르몬은 식사 직후에도 치솟았다.
저자는 영국 등 많은 국가가 비만 문제 해결에 실패하는 이유도 비만을 ‘상업 유발성 질병’이라는 틀에서 바라보지 않아서라고 일갈한다. 식품기업들의 탐욕으로 만들어낸 초가공식품이 비만의 원인인데도 이 기업들의 마케팅과 로비 때문에 그 원인을 식품산업 쪽에서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유해식품에 경고 라벨을 붙이거나 영양 관련 전문가 및 기관들이 식품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등 이해충돌을 끝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