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2021년 폐기물 처리 문제로 양사 갈등 불거져”
“영풍, 월5000톤·연간 6만톤 산업폐기물 처리 지속 요구” 주장도
영풍 “고려아연 주장 사실과 달라, 갈등 책임은 최윤범 회장” 반박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영풍과 고려아연 간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영풍 석포제련소에 쌓여 있던 약 85만톤에 달하는 산업폐기물이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영풍과 손잡은 MBK파트너스(이하 MBK) 측에서 “2022년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의 경영충돌로 갈등이 시작됐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그보다 1년 앞선 지난 2021년 영풍이 고려아연 측에 산업폐기물을 떠넘기려 한 것이 양사 갈등의 시발점이 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26일 고려아연과 제련업계에 따르면 장 고문은 2021년 낙동강 상류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해 쌓여 있는 60만~85만톤가량의 산업 폐기물(자로사이트) 가운데 6만톤 가량을 월 5000톤씩 고려아연이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고려아연 고위 관계자는 “지난 2021년 9월 장 고문이 고려아연 최고경영진을 불러 모아 석포제련소의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안을 거론했다”며 “당시 일부 고려아연 임원진이 안전 문제 우려 등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하자 정 고문은 최고경영진에 ‘그들을 업무해서 빼라’는 취지로 말하고, ‘만일 석포제련소 가동을 멈춰야 하는 통보라도 받는다면 당신들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앞서 지난 2014년 중금속으로 인한 토양·수질 오염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이에 환경부가 조사에 나서 낙동강으로 카드뮴 등 제련 잔재물이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2021년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받았다.
이와 관련 검찰은 ‘환경범죄 등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영풍 대표이사와 석포제련소장 등 임직원 8명을 기소해 이들은 현재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토양과 지하수 오염 우려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면서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자 영풍이 산업폐기물의 상당수를 고려아연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려 했고, 이를 거절하면서 양측 간 갈등이 시작됐다는 게 고려아연 측 주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당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역시 강화된 통합환경허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더욱이 그간 고려아연이 처리하던 이차원료와는 다르게 석포의 산업폐기물은 오염도가 더욱 심각하고 유가금속 함유량이 낮아 처리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산업폐기물은 처리 시 다량의 질소산화물이 발생해 대기 배출규제 준수가 불가하다는 게 기술진의 판단이었고, 이를 받아줄 경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마저 환경위반에 직면하는 등 피해가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4일 열린 고려아연 측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공대됐다. 회견장에 선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은 “장 고문은 산업폐기물 처리 문제 해결을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를 통해 하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남의 공장 폐기물을 받아 처리하는 것은 배임이고 범죄행위여서 할 수 없었다”며 “장 고문의 부당한 요구를 막은 것이 바로 최 회장이었고, 그 뒤로 (영풍과)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산업폐기물 처리 이후 장 고문은 고려아연이 추진하고 있던 신사업에 잇따라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게 고려아연 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85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온산제련소장 겸 기술연구소장을 거친 정통 엔지니어로 약 40년간 고려아연과 영풍의 동업 관계를 현장에서 지켜본 ‘산증인’으로 꼽힌다.
이후에도 양측은 영풍 석포제련소의 여러 배출 물질을 고려아연에서 처리하는 문제를 두고 잇따라 충돌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지난 6월에는 고려아연이 관리 시설 노후화 및 저장공장 부족 등을 이유로 석포제련소에서 배출된 황산 취급 대행 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과 관련해 영풍이 ‘불공정거래행위 예방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반면 영풍은 이번 양사 갈등의 원인으로 최 회장을 지목하며 대조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이후 최 회장이 한화와 현대차 그룹 등에 잇따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및 자사주 상호 교환 등으로 16% 상당의 지분가치를 희석시켜 최대주주 영풍과 갈등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영풍 측은 “최 회장의 행보가 최대주주 영풍과의 갈등을 만들었고, 결국 MBK와 공개매수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MBK와 영풍은 이날 고려아연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주당 66만원에서 13.6% 오른 75만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고려아연 상장 이후 역대 최고가인 주당 67만2000원 대비 11.6% 높은 수준이다. 아울러 3개월, 6개월간 평균 종가(VWAP)에 45.1%, 50.5% 할증된 가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