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계부정으로 자사고 지정 취소
1심 “취소 처분 타당”→2심 “취소 위법”
자사고 취소 사유 ‘법률’로 정해야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전임 이사장의 52억 횡령으로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던 휘문고가 기사회생했다. 휘문고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취소됐는데, 법원은 지정 취소 사유는 법률로 정해야 해 지정 취소 처분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1-1부(부장 최수한·윤종구·김우수)는 25일 학교법인 휘문의숙이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무효인 시행령 조항에 근거한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했다.
자사고 설립 근거 조항은 초·중등교육법 61조다. 해당 조항은 제한적으로 교원 자격, 수업·학년제, 교과용 도서 등 초·중등교육법 규제가 배제되는 학교를 세울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자세한 운영 방침은 대통령령에 위임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은 자사고의 설립, 운영, 지정 및 지정취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20년 8월 휘문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이 감사를 벌인 결과 명예이사장 A씨가 자사고 지정 전인 2008년부터 학교발전기금 52억원 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5년부터 휘문고 행정실장으로 근무한 B씨 또한 횡령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거로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다. 시행령에는 지정 취소 사유 중 하나로 회계부정을 들고 있다.
휘문의숙은 전임 이사장의 횡령을 이유로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는 것은 학생·학부모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제재라며 처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22년 1심 재판부는 서울시교육청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취소 처분으로 침해되는 기본권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 처분 이전인 2020년 2월 문재인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 91조의3)을 삭제해 2025년부터 모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자사고는 2025년부터 폐지될 예정에 있는바 이 사건 처분으로 원고가 입는 피해 규모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사고→일반고 일괄 전환 정책 폐지되면서 재판부 판단도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1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삭제된 시행령을 복구했다.
2심 재판부는 자사고 지정 취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어 반드시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봤다. 휘문고 지정 취소 근거가 된 시행령은 초중등교육법 취지와 어긋나 애초에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취지다.
먼저 2심 재판부는 고등학교 제도는 기본권과 연결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고등학교의 제도, 종류,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국가와 사회 질서에 미치는 영향과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며 “자사고 운영에 관한 제도는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선택권, 학교법인의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 등 기본권 실현에 관한 영역”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사고 지정 취소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지정된 학교의 법적 지위를 박탈하는 처분으로 침익성이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초중등교육법 제61조의 취지를 감안했을 때 ‘취소’ 사유까지 시행령으로 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법률 조항에서 대통령령에 위임한 것은 학교의 운영과 관련된 내용으로 볼 수 있을 뿐 ‘운영권을 박탈’하는 지정 취소에 관한 사항까지 위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초중등교육법 61조에 따라 시행령으로 정할 수 있는 내용은 구체적인 운영에 대한 것으로 한정된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조항(시행령)은 법률의 위임 없이 법률이 정하지 않은 자사고 지정 취소에 관해 규정해 헌법에 의해 보호되는 학교선택권 내지 사학운영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 그 자체로 무효”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 조항은 위임한 내용을 구체화하는 단계를 벗어나 자사고 지정 취소에 관한 새로운 입법을 한 것으로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