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의 글로벌 파워와 한일 교류 의미 [서병기의 문화와 역사]
지난 6월 일본 도쿄돔에서 1980년대 일본 가수 마쓰다 세이코의 노래인 ‘푸른 산호초’를 부르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왼쪽)와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이뤄낸 ‘보아’, 일본내 큰 팬덤을 가진 그룹 ‘방탄소년단’
K-팝의 글로벌 파워와 한일 교류 의미 [서병기의 문화와 역사]

한국배우 채종협을 ‘태오’로 재탄생시킨 일본 민영방송국 TBS의 오리지널 기획 드라마 ‘아이러브유(Eye Love You)’ 총괄 프로듀서 나카지마 케이스케 PD가 제5회 세계문화산업포럼 어워즈를 수상해던 지난 7월 3일 밤, 이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던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와 스몰 토크를 한 적이 있다.

이 전 총괄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일본과 중국에 이어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 다시 말해 K-팝의 글로벌 성공 비결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은 매니지먼트제(기획사)이고, 미국은 에이전시 제도라는 점이 큰 이유라는 것이다.

매니지먼트 제도에서 제작자는 자신의 자금이나 투자를 받아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기 때문에 그룹과 운명을 같이 한다. 같이 흥하고, 같이 망한다. 반면 에이전시는 아티스트의 계약과 매출 등에서 전문적인 서비스에 대한 약간의 수수료(legal fees)를 받을 뿐이다. 미국은 이 같은 제도상의 규제로 인해 회사가 아이돌에 대한 투자와 제작을 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런 상이한 제도하에서 한국은 제작자가 아이돌 그룹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은 인기 아이돌 그룹이라도 지속력을 가지기 힘들었다.

미국도 인기 아이돌 그룹이 있었다. 1980~90년대 활동했던 미국 아이돌그룹이자 원조 ‘틴팝 그룹’ ‘뉴 키즈 온 더 블록’과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R&B 걸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도 인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해체됐다. 이후 주춤해진 미국 아이돌 그룹의 공백 상황에서 한국 아이돌이 비교적 쉽게 북미 지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 결과적으로 볼때 세계 최대 음악산업 시장을 가진 미국은 아이돌 그룹 시장을 한국에 내준 꼴이 됐다.

게다가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매니저이자 음반 기획자는 멤버인 비욘세의 아버지인 매튜 놀즈였다. 그는 자신의 딸인 비욘세의 분량을 많이 주고 다른 멤버들을 들러리로 세워, 이들이 팀을 탈퇴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결국 비욘세는 솔로로 전향해 대형 가수가 됐다. 또, 일본은 한국과 같은 매니지먼트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내수시장을 고수하다 해외진출 기회를 놓쳐벼렸다. 일본의 매니지먼트는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월급제 등 우리와는 다른 점도 꽤 있다.

새로운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 계약기간이 의미하는 것

그런데 이제 한국도 아이돌 그룹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10일 열린 매경 세계지식포럼 ‘Power of K-POP’ 세션에서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새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 개정안이 대중예술인과 기획사(제작자)간 최초 계약 기간을 7년을 초과하지 못하게 하고 연장하는 경우 서면으로 합의하도록 한 게 제작자가 아이돌에 대해 투자할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행 제도는 7년을 초과한 계약기간도 가능하다.

물론 표준전속계약서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정부로서의 권고 또는 추천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법적 분쟁으로 가면 강력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에 표준계약서상의 계약기간은 아이돌 산업을 발전시킬 수도 있고 위축시킬 수도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방탄소년단을 데뷔시킨 2013년 6월 13일 직전만 해도 걸그룹 ‘글램’의 실패 등으로 수십억원의 차입을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하며 7인조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을 론칭했는데, 최초 계약기간이 7년 이하라면 이런 시도들이 어려워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최근 아이돌 그룹은 대다수가 국내를 넘어 해외 활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계약기간이 더 길어져야 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준비기간이 길어지는 해외활동에 대한 별도의 계약기간 규정이나 단서가 필요하다는 것. 아이돌 그룹의 해외 공연이 잦아지면 몇 차례 해외 공연 투어만 돌아도 남은 계약기간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보면 아이돌 양성시스템도 계약기간이 길어야 투자 회수가 가능한 산업이다. 따라서 표준계약서상의 계약기간은 대중문화예술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K-팝 한류산업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정교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필자는 아이돌 그룹의 7년이라는 계약기간이 짧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티스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K-팝 아이돌 그룹에 대한 투자와 제작 의지도 위축되지 않도록 좀 더 세세한 논의를 거쳐 표준계약서 계약기간을 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서혜진 크레아 스튜디오 대표는 “정부에서 규제로 일관하면 대기업만 살아남는다. 개성이 없어진다. 중소기업에서 나온, 작지만 특색있던 아이돌들이 모두 죽게된다. 이런 게 앞으로의 K-팝 시장에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K-팝의 최대 무기는 강력한 팬덤 커뮤니티

이날 세계지식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온 프랑스의 파스칼 브레이시어 교수는 K-팝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디에도 없는 팬 커뮤니티라고 한다. 파스칼 교수는 K-팝이 왜 세계적으로 성공했냐는 질문에 “모든 K-팝 팬층이 구매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온, 오프라인으로 모두 연결돼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여러 개의 방이 운영되면서 각각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좋은 얘기도 있고, 나쁜 얘기도 있는데 나쁜 얘기는 더 빨리 퍼진다”면서 “지난 25년동안 K-팝 팬들은 전세계에서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역동성을 이끌고 있다. 동유럽, 남미까지 포함한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강력한 커뮤니티 팬덤 형태다. 그것들이 디지털 공간, SNS상에서 섹션화하면서 브랜딩된다. 여기에는 기업의 특정 브랜드의 팬들도 있다. 앞으로도 미래를 K팝 팬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서혜진 크레아 스튜디오 대표는 K-팝 한류의 성공을 유능한 엘리트 프로듀서의 배출과 디지털화라는 두가지로 설명했다.

‘미스트롯’ ‘미스터르롯’ ‘한일가왕전’ 등을 만들어낸 서혜진 대표는 “초기 가요시장은 아무나 기획사를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았지만 이수만, 박진영, 방시혁 등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 전략을 가지고 기획사를 운영했다. 이들은 팬덤을 어떻게 만들고 활용할 것인가 등등을 생각하면서 기존 시장과는 다른 혁신을 가져왔다. 가요시장이 음원산업으로 바뀔 때도 그에 대응하는 전략을 잘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대표는 “일본은 디지털 초상권이 엄격하다. 아티스트 얼굴, 재킷 하나만 써도 비용을 지불한다. 우리는 ‘한일가왕전’때도 일본 채널에 나가기 위해 낮은 가격으로 넘겼다. 아이돌 오디션 시장은 여성팬이 남성을 보고 돈을 쓰는 구조, 즉 남자를 뽑을 때 반응이 더 크게 나온다. 성인가요시장이 한국은 작다. 일본성인가요시장을 공략하려고 ‘한일가왕전’과 ‘한일톱텐쇼’를 기획했다. 내년초에 일본남자가수를 우리가 뽑는다. 일본시장과 함께 간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우리와 다르지만,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가수가 늘었다는 것의 의미

최근 들어 일본에서 진출하는 한국가수가 부쩍 늘었다. 뉴진스, 르세라핌 같은 아이돌 그룹은 물론이고, 수영, JD1(정동원), 태호, KCM, 신의진 등 다양한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했다. 트로트, 레트로 시장도 한일 교류가 이뤄지고, 프로젝트 그룹이지만 한일걸그룹도 등장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K-팝 시상식도 자주 열린다. 이세영, 한효주, 옥택연, 황찬성 등은 일본배우들과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거나 일본드라마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일본 J팝의 가수들도 한국 음악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일본 천재 싱어송라이터 후지이 카제는 오는 12월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두 번째 아시아 투어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6월은 2000석 규모의 광운대 동해문화예술극장이었지만, 이번에는 2만석 규모의 고척돔 무대에 단독으로 오른다. 후지이 카제는 티켓 오픈 직후 고척돔 전좌석이 매진됐다. 그는 일본 가수 최초 고척돔 입성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인기를 입증했다. 이마세와 요아소비는 한국무대에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일본에 진출하는 수많은 가수들은 보아의 일본 진출 케이스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사실 보아의 30억 프로젝트는 HOT를 통해 번 돈을 거의 다 집어넣은 엄청난 모험이었다”면서 “기업은 돈이 되는 일을 하는 유기체다. 만약 보아가 실패했다면 SM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음악 영재 교육을 받았던 보아가 14살의 나이로 데뷔했던 2000년 무렵은 한국에서 ‘미들틴’ 시장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2001년 일본으로 빨리 간 것은 그런 이유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아가 일본에서 바로 반응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보아의 일본 활동을 책임진 에이벡스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제 그만하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2년 댄스팝 ‘LISTEN TO MY HEART’가 터지면서 보아는 일본에서 날개를 달게된다. 이 앨범으로 보아는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차트 1위에 오르는 영광도 달성했다. 이후에도 보아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노래를 히트시키며 아시아의 ‘넘버1’이 됐다. 그는 일본 가요계에서는 웬만한 상은 다 받았다. 보아는 훗날 “울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일본 데뷔 당시를 회상해 사람들을 짠하게 만들었다.

한국과 일본은 시장 확대 차원을 넘어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서로 교류가 필요하다. 이미 세계화된 K-팝을 일본인들이 좋아하고, J팝이 국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현상은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이라서 더욱 반갑다. 장기적인 현상으로 갈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