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엔 소고기가 놓였지만 대화테이블엔 의료사태가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여당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면서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술을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위해 차를 준비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90분간 이어진 식사에선 최대 국정 현안인 의정 갈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여당 신임 지도부와 상견례로 의미를 뒀지만 민생과제가 산적한 만큼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회동을 다시 요청했다고 하니 이른 시일 내에 만나 메뉴 대신 의제를 앞에 놓고 국민이 원하는 대화를 하기를 바란다.

이날 만찬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은 지난 7월 이후 두 달 만으로, 애초 지난달 30일로 예정돼 있다가 명절 연휴 이후로 미뤄진 끝에 성사됐다. 대통령실은 추석을 앞두고 ‘민생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우선’이라고 연기 이유를 댔지만 정치권에선 한 대표가 정부 방침과 달리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를 공개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도 한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또 뒷말이 무성했다. 대통령실이 “별도로 협의할 사안”이라고 독대를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일대일 만남은 결국 무산됐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관계가 냉랭해지고 당정이 불협화음을 노출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대통령실로선 의대 증원 문제에 여당 대표가 정부 방침과 다른 의견을 내고,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위한 대통령의 체코 방문 성과를 국민에게 알려야 되는 시점에 독대 문제가 불거져 서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만찬에서 주로 체코 방문과 원전 생태계를 화제로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과 충분히 공유해야 하는 중요한 의제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이번 회동은 추석민심을 점검하고, 의료개혁을 비롯한 개혁과제와 민생현안을 논의하는 폭넓은 소통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 점을 고려하면 국민 기대에는 못 미쳤다고 할 것이다.

이번 회동은 최근 부진한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에 반전을 꾀하고 국정동력을 회복할 중요 계기가 될 만했지만 여러모로 미흡했다고 할 것이다. 한 대표는 이날 대통령실에 “중요 현안들에 대해 논의할 자리를 다시 잡아 달라”며 독대를 재요청했다고 한다. 국민이 기댈 곳은 결국 정부와 여당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민생을 놓고 만나 치열한 논의를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당정 갈등과 국민 우려를 불식시킬 다음 회동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