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끝나면서 MMF 등 이탈 전망
블룸버그, ‘엔 케리 트레이드’ 정리 가능성
일본 19~20일 통화정책회의
[헤럴드경제=유동현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국제 투자 자금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금으로 5% 넘는 수익을 쉽게 얻는 시대가 끝나면서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부터 자금이 나오고 금과 채권으로 자금 유입이 기대된다. 일각에선 엔화 강세에 따른 ‘엔 케리 트레이드’ 청산이 재현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4.75∼5.0%로 0.5%포인트 낮추며 금리 인하 사이클의 시작을 알렸다. 연준은 이날 회의 후 공개한 점도표(기준금리·전망을 보여주는 도표)를 통해 올해 말 기준금리 수준을 4.4%로, 내년도 연준 금리 목표치를 3.4%로 각각 제시했다. 연내 0.5%포인트, 내년 중 총 1%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미국에선 고금리에 힘입어 MMF 등으로 수조 달러가 유입됐다. 인베스트먼트 컴퍼니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MMF에 유입된 개인 투자금이 연준 금리 인상 6개월 후인 2022년 9월 1조5000억달러(1998조원)에서 지난주 약 2조6000억달러(3463조원)로 늘었다. 전체 자산은 6조3000억달러(8392조원)에 달한다.
일각에선 금리 인하로 MMF에서 자금이 빠져나올지 주시하고 있다. MMF에 현금을 넣어둔 투자자들에게 수익률 확정을 위해 채권 등으로 갈아타라고 권한다. 그러나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MMF 매니저인 데버러 커닝엄은 “은행 예금 금리가 낮아서 갈 곳이 없다 보니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전체 MMF 자산이 7조달러 이상에서 정점을 찍을 것 같다”고 봤다.
미국 금리 인하는 글로벌 금리 차이를 이용해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행태인 캐리 트레이드의 흐름을 바꾼다. 그동안은 제로 금리였던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서 미국 증시의 기술주나 멕시코, 호주 등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했다. 그러나 미국 금리는 내려가고 일본 금리가 올라가는 추세여서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 지난 7월 말 일본 금리 인상 후엔 투자자들이 급하게 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며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일본은행 금리 결정과 맞물려서 미국 고용시장 냉각을 시사하는 지표가 발표되면서 미 경기침체 우려와 금리 인하 폭 확대 전망이 확산해 파장이 더욱 커졌다. ‘블랙 먼데이’로 기록된 지난달 5일 일본 증시에서 닛케이225는 역대 최대 하락 폭인 4,451포인트(12.4%) 떨어졌다. 한국 코스피와 대만 자취안 지수도 마찬가지였고 미 기술주도 수직으로 추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에도 엔화 강세가 촉발되면 엔 캐리 트레이드 거래가 대거 정리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엔화는 미 ‘빅컷’(0.5%포인트 인하) 전망에 지난 16일 달러 대비 환율이 139엔대로 내려가며 작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뒤 현재 142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엔화 환율은 지난 7월 초에는 160엔대를 넘었다. 환율 하락은 통화 강세를 뜻한다.
일본은행은 19∼20일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하고 금리 동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시장은 향후 인상 계획 관련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퀼터 셰비오트의 채권 리서치 책임자인 리처트 카터는 미 금리 인하에 관해 “세계 성장에 매우 중요한 동인으로서 세계 자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리 인하는 금값과 국제 유가에 통상 호재로 간주된다. 기름값은 차입 비용 감소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되고 수요가 늘어나면 그 영향에 상승하곤 한다. 금값은 금리인하 기대로 사상 최고가 행진을 벌여왔으며 이날도 빅컷 발표 후 현물 가격이 2599.92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가 소폭 반락했다.다만 이날 국제 유가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0월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70.91달러로 전 거래일 대비 0.39% 하락했다. 비트코인은 금리 인하 후 소폭 상승해 6만1000달러선을 회복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경제 건전성에 의구심이 커지면 아시아 신흥 국가의 자산 매도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지만 금리 인하에 경기침체 우려가 따라붙지 않으면 동남아 신흥국이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미 지난 수개월간 펀드 매니저들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국채 보유를 확대했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주식을 사들였다고 전했다.
인도는 외국 투자자들이 몰려와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시장에 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미 금리 인하는 중국 위안화 강세를 가속할 수 있지만 최근 부진한 경제 지표는 걸림돌이다.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된 CSI 300 지수는 지난주 2019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은 경기침체가 아닌 상황에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경우엔 글로벌 주식시장 전반에 좋은 징조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카슨 그룹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라이언 테트릭이 10차례 미 통화정책 완화 사이클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금리를 정상화하기 위한 인하일 때는 조정 시작 후 1년 만에 S&P 500지수가 평균 13% 올랐지만 경기 침체 때는 12% 하락했다.
바클리의 유럽 주식 전략 책임자 이매뉴얼 카우는 “시장은 금리 인하 배경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첫 인하 전후엔 항상 흔들린다”며 “하지만 경기 침체 없이 금리를 내리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다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채권이나 달러화도 경기 침체 여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시티의 스트래티지스트들에 따르면 블룸버그 미국 국채 지수는 첫 금리 인하 후 12개월 만에 중앙값 기준으로 6.9% 상승했는데 경제 연착륙 때에는 2.3% 올랐다.
골드만삭스가 과거 10차례 금리 인하 사이클을 분석한 결과 경기 침체가 아닐 때는 첫 인하 후 1년 만에 달러가 무역 가중 통화 바스켓 대비 7.7% 상승했다. 경기 침체기 때 상승률은 1.8%였다.
골드만삭스는 여러 중앙은행이 동시에 금리를 내릴 때는 달러가 다른 통화보다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6월 말 이후 약세지만 지난 3년간에 비하면 여전히 9% 더 높다. 달러 인덱스는 6월 26일 106.127을 찍고 8월 27일엔 100.5까지 떨어졌다가 이날은 100.970으로 전날보다 0.05%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