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피해 딛고 일어선 필리핀 여성 A씨 인터뷰

10년 넘게 남편 폭언·폭행에 시달려…트라우마도 여전

“엄마 없음 나도 죽고 싶다”는 자식들 보며 회복 노력

“간절히 바랐던 자유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 중”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내 삶을 망치로 파괴했다”…‘2중 약자’ 필리핀 부인 이야기[우리사회 레버넌트]
가정폭력 피해자 A씨는 최근 일상의 행복을 찾아나서고 있다며 가족들과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에 놀러가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안효정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쾅쾅쾅….’ “문 좀 열어보세요. 경찰입니다.”

2024년 1월 13일 오후 10시 50분께 서울의 한 빌라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가정 내 큰 싸움이 일어난 것 같다는 이웃의 신고를 받고서 경찰이 출동한 것이었다. 집으로 들어선 경찰에게 A씨의 남편은 ‘돌아가라’며 짜증을 냈고, 아내 A씨는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며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바닥엔 망치가 놓여 있었으며, A씨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은 두 자녀가 보는 앞에서 망치로 A씨의 왼쪽 머리와 왼쪽 어깨를 내리쳤고, 주먹으로는 A씨의 오른쪽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편은 특수상해와 아동학대 혐의를 받아 A씨와 분리 조치됐다. 재판부는 남편에게 1년 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현재 남편은 구속수감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약 4개월이 지난 21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A씨는 과거의 상처를 딛고 씩씩하게 행복을 찾아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자녀들과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으로 힐링 캠프도 다녀왔다고 했다. A씨는 “날씨도 따뜻하고 나무도 푸릇푸릇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밝게 웃는 걸 보니 ‘자식 때문에 산다’는 말이 뭔지 알겠더라”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A씨는 “10년 만에 잃어버린 자유를 찾은 느낌”이라며 “걱정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불쑥 튀어나와도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필리핀도 떠나지 않고 결혼도 안 할래요”

A씨는 10여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자유를 빼앗겼다. 2012년까지만 해도 A씨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이었다. 마닐라에서 3일동안 배를 타고 가야하는 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A씨는 컴퓨터를 전공으로 마닐라의 한 대학교에 들어갔다.

생계와 학업 모두를 놓칠 수 없었던 A씨는 매일 오후 1~5시는 공부를, 오후 8시~오전 6시까지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계속되는 밤샘에도 힘든 줄 몰랐던 건 당시엔 적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A씨는 “친동생이 나처럼 대학을 가고 싶어했다. 동생에게 ‘내가 졸업하고 취업까지 하면 너가 대학에 갈 수 있게 꼭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졸업을 해도 취업은 쉽지 않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돈마저 부족해 A씨의 희망은 금방 꺾였다. 답답해하던 그에게 한 친구가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추천했고, A씨는 처음에는 탐탁지 않았으나 한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일자리를 얻으면 적어도 동생에게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A씨가 필리핀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넘어온 이유다. A씨는 그렇게 2013년 가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자신과 26살 차이가 나는 50대 남성과 결혼을 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전 필리핀도 떠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을 겁니다.” A씨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던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는 내 삶을 망치로 파괴했다”…‘2중 약자’ 필리핀 부인 이야기[우리사회 레버넌트]
지난 2013년 가을 A씨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50대 남성과 결혼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안효정 기자

A씨는 낯선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남편이 구속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지옥 속에서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A씨의 남편은 한국말이 서툰 그에게 ‘말이 안 통한다’며 욕을 퍼부었고, 수시로 칼을 꺼내 겨누며 ‘도망가면 죽는다’고 협박했다. 술을 마시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너 하나 죽으면 그만’ ‘외국인은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다’ 등의 폭언을 쏟아냈고 종종 A씨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A씨가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는 과정은 여과없이 어린 자녀들에게 노출됐다. 그는 “아이들이 제가 맞는 걸 보긴 봤어도 어려서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기억하더라”라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험한 것만 보고 자란 것 같아 너무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특히 A씨의 큰딸은 ‘어디선가 아빠 목소리가 자꾸 들린다’며 이명과 환청으로 괴로워한다고 A씨는 설명했다. 큰딸은 자신의 이름을 ‘성인 남성’이 부르기만해도 경기를 일으키며 다급히 A씨를 찾기도 했다고 A씨는 말했다. 방 구석에 쪼그려앉아 귀를 막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볼 때면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던 A씨. 그는 “‘모든 사람이 아빠같은 건 아냐’ ‘네 이름은 예쁜 이름이야’ 등의 말로 아이를 달래는 것 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남편이 구속된 이후에도 A씨와 그의 자녀들은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받았다. 잠을 자다가도 2시간마다 깨기 일쑤였으며, 겨우 다시 눈을 붙여도 남편으로부터 위협받는 악몽에 시달렸다. A씨는 “입맛도, 기력도, 살아갈 의지도 없는 시간들을 꾸역꾸역 보냈다”고 전했다.

“딱 지금처럼만 ‘평범’하게”…현재에 집중하며 잃어버린 일상 되찾아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옥상을 향해 걸어올라갔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옥상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갑자기 시야가 까맣게 어두워졌어요. 이대로 떨어져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걸음 앞으로 내딛으려던 순간 A씨를 멈춰세운 건 큰딸 목소리였다.

“엄마 뭐해..?”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A씨를 찾기 위해 큰딸이 옥상에 올라온 것이다. 큰딸은 A씨 다리를 붙잡으며 “엄마 죽으면 안돼. 엄마 없으면 나도 죽고 싶어요”라고 외쳤다. A씨는 “그 말을 들으니 ‘아, 내가 딸 두고 이러면 안 되지. 정신차리자’ 싶었다”고 했다. 그는 “엄마가 파이팅이야, 엄마가 포기하지 않을게. 미안해”라고 말하며 우는 딸을 다독였다.

그날 A씨는 딸과 옥상에서 내려오며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더이상 아이들이 누려야 할 재미와 행복마저 뺏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A씨는 회복을 위해 검찰청의 지원을 받아 아이들과 임시주택으로 터를 옮겼다. 심리 상담도 열차례 넘게 받았다. 자녀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식당이나 호텔에 나가 설거지와 청소 등의 일을 하며 생활비를 모았고, 퇴근 후에는 학교 수업을 마친 자녀들을 데리고 놀이터와 강가 산책로에 가 ‘가족 시간’을 보냈다.

A씨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랑 제가 같이 있는 순간을 만끽하는 ‘가족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우리 셋이 붙어있는 시간은 지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에 사는 필리핀 친구들의 도움도 받고 있다. A씨는 “이전에는 남편이 필리핀 사람들을 못 만나게 해 교류할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같이 밥도 먹고 반찬도 서로 나눠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고민 상담도 한다”고 전했다.

“하얀 공을 열면 카네이션이 툭 튀어나왔는데, 그 밑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나랑 동생 키워줘서 고마워요’라고 써 있었어요.” A씨가 어버이날에 큰딸로부터 받은 카네이션을 자랑하며 말했다. 그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들이 많아 늘 미안한 마음 뿐이라 감사 편지를 받으니 뭉클했다”며 “못난 모습 많이 보여줬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로서 자식들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울컥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내 삶을 망치로 파괴했다”…‘2중 약자’ 필리핀 부인 이야기[우리사회 레버넌트]
A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 ‘나중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두 아이들의 엄마로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 안효정 기자

요즘 A씨는 일요일마다 동네 성당에 나가 두 가지 내용의 기도를 한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과 나중에 어려움이 닥쳐도 엄마로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기도다. A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A씨의 목표는 올해 안에 가족들과 필리핀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는 결혼 이후 11년동안 가지 못했던 고향을 찾아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자녀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A씨는 “부모님이 아직 아이들을 한번도 보지 못해서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며 “더 늦기 전에 올해는 꼭 우리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가족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현재에 집중해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번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도 없더라고요. 이제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그리웠던 건지, 얼마나 바랐던 건지 그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요. 힘들 땐 과거나 미래를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