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학폭·불안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킨 28세 K씨
6년간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가정불화·훈련소 중도 퇴소
손 내민 부모님…고립 청년 지원 프로그램으로 세상 나와
사회로 나오자 변화 시작…단편 다큐 영화 출연도 나서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았어요. 뭘 하고 싶은지도 몰랐어요. 그렇게 스스로를 옭아맸어요. 집안에 박혀있으니 6년이 흐르더라고요. 웃긴 것은 저를 방안에 가둔 계기였던 부모님이 저를 방 안에서 탈출시켜 주더라고요.”
28세 K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부터 은둔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빠져나오려고 몸부림도 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했다.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우울함과 고립감은 갈수록 그를 파고들었다.
사람과 관계 맺을 수 없다는 불안감…“사회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진 기분”
그가 고립감에 빠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학창 시절 겪었던 ‘학원 폭력(학폭)과 그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어릴때부터 이어져 온 가정불화에 불만이 있었던 찰나 학폭은 사회성을 떨어지게 만든 계기였다.
“애초에 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의 강요로 학원에 다녔어요. 그곳에서 동창들에게 소위 ‘학폭’을 심하게 겪었는데. 부모님께 ‘학원 다니기 싫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으나 들어주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부모님은 ‘계속 다녀라’고 크게 혼을 냈어요. 그 이후로 부모님에게 말하기가 힘들어지더라고요. ‘괴롭힘을 심하게 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동창들의 학폭은 그에게 큰 트라우마를 줬다. 그럴수록 부모님의 간섭도 심해져 갔다. 사회활동을 하려고 나섰지만,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를 급습했다. 그렇다고 사회 활동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일을 겪은 이후 사회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해진 것 같았어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 긴장도 많이 하고 불안도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도 사회에 나가보려고 노력했어요. 뭐라도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부모님이 해보라는 어떤 것이든 해봤어요.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지만요. 단기로 할 수 있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등에 나갔어요. 물론 적응하진 못했어요”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반복된 실패의 경험은 그를 갈수록 위축시켰다. 그는 “좋은 일자리를 소개 받아 아르바이트를 갔어요. 처음 하는 일이라 조금 실수를 했는데, 그 순간 ‘혼나면 어떡하지’, ‘내가 또 뭔가 망쳤구나’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또 사람과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것 같다’라는 마음이 엄습하더라고요. 그렇게 잘해낼 자신이 없어서 하루 갔다가 그날 그만뒀어요”라면서 한숨 쉬었다. 그렇게 그에겐 ‘그만두는 것’이 일상이 됐다.
6년간 스스로 고립…가족과 갈등, 부모님과 “자식은 낳는게 아냐” 싸움도
그는 그렇게 서서히 스스로를 고립시켜 갔다. 방안에 틀어박혔고, 게임에 빠져 하루를 보냈다. 6년 동안 집 밖을 나간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한다.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과는 마주칠 때마다 갈등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외출이 거의 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면서 은둔 상태가 최소 6개월 이상 유지되고 최근 한 달 이내에 직업이나 구직 활동이 없는 것을 ‘은둔 청년’, 6개월 이상 정서적 또는 물리적 고립 상태에 있는 경우 ‘고립 청년’이라 부른다. K씨는 이 과정을 6년 이상 겪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20~30대 청년 중 5% 이상은 고립·은둔 상황에 있다. 약 54만명이 타인과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고립·은둔 청년(19~34살) 대상 온라인 발굴 및 전담 지원체계를 운영하며 ‘고립·은둔 청년 지원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왜 이렇게 약한 모습만 보이냐’, ‘니가 무슨 어려움을 느낀다는 거냐’ 이런 말이 돌아오더라고요”라며 “그렇게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화장실도 안가거나 그렇건 까진 아니고요. 그런데 대부분 하루를 게임하고 자고, 그렇게만 보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삶을 보내고 있으니 할머니가 ‘밥버러지’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그러려니 했어요. 의지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자식은 낳는게 아닌 것 같다’ 이런 말도 들었어요. 저도 지지 않았어요. 엄마한테 똑같이 ‘왜 낳았냐’ 이런 말도 하고 했어요”라고 토로했다.
우울감에 빠져있던 그에게 ‘고립 청년 지원 프로그램’ 소개한 부모님
반전이 없었을 것이라 우울감에 빠져있던 그의 삶을 구원한 것은 결국 부모님이었다. 그의 마음의 어려움을 부모도 서서히 깨달았던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뉴스를 통해 ‘은둔·고립 청년’이라는 단어를 알았고, 그를 ‘은둔·고립 청년’으로 깨닫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부모님이 K씨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깨닫게 된 시점은 ‘입대’였다. 그는 군대 훈련소를 견디지 못했다. 우울증을 진단 받고 훈련소를 중도 퇴소 했다. 이 사건으로 부모님이 그를 대하는 태도도, 그가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갈등의 시작점이었던 부모님과의 관계도 조금씩 변해갔다.
그는 “부모님이 ‘고립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거기라도 나갔어요”라며 “안 좋은 걸 곱씹으면 심리적으로 더 불행한 상태가 되더라고요. 나이도 먹어가고, 군대에서도 나오고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나가게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고립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적 연결을 시작했다. ‘서울시 청년기지개센터’는 숨어있던 그를 발굴해 장기회복 프로그램과 이어줬다.
그는 은둔 고립청년 사회복귀 지원사업인 ‘움직이는 섬 1기 활동’에 참여하며 커피트럭 운영·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전문 심리상담·사회복귀교육을 받았다.
그는 “6개월 중 2개월 동안 같은 숙소에서 합숙 생활하며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서비스 직종 일을 처음으로 제대로 해봤다”라며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고, 커피트럭도 운영했어요. 그렇게 ‘나도 서비스직을, 사회활동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면서 미소를 띠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집중한 지점은 은둔 고립청년이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은둔 생활로 돌아가는 재고립 방지였다.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활동도 계속 참여했다. 그는 여기서 친구를 사귀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스스로를 갉아먹던 불안을 극복해 나갔다. 그는 “하루 만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던 제가 3일 동안 축제에서 커피 1500여잔을 팔기도 했어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니 모든게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어요”라고 했다.
사회와 연결되자 시작된 변화…면허·영화 출연까지 “비슷한 이들 용기 얻었으면”
사회에 발을 내딛자, 조금씩 그도 변했다. 맨몸 운동이라는 취미도 생겼다. 과거 취미였던 등산도 다시 시작했다. 그는 최근 운전면허도 땄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도 몸도 변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일들을 겪는 이들을 위해 ‘단편 다큐 영화 출연’을 하기도 했다.
아직은 직업이 없지만, 그에게도 이젠 꿈이 생겼다. 사회적 기업의 물류 담당 직원. 그는 이제 처음 보는 사람과도, 누구와도 이야기할 자신이 있다고 한다.
“방안에 있으면서 내가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답답하기도 하고. 이렇게 지내는게 나한테는 맞는거 아닌가 했어요. 밖에 나가면 내가 실수하고 사람들하고 서먹하고 불편할거 같았어요.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오랫동안 한거 같아요. 그래도 저도 변했어요. 이제는 처음 만나도 지금 인터뷰하는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스스로 드러내고 공유를 하면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얻지 않을까요? 저도 이렇게 도움을 받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