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르포
김동관 이끄는 방산·항공우주…그룹 핵심 발돋움
탄탄한 기술력…설계·제조 넘어 MRO 역량 확보
1만호 엔진 ‘F404’ 성능 시험…국산화 적극 투자
설계부터 생산까지…6세대 전투기 엔진 독자 개발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창원)=한영대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엔진 사업 역사가 곧 우리나라 항공기 엔진의 역사입니다.”(이광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항공사업부장 전무)
12일 경남 창원에 위치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1사업장 시험동. 시험동에 있는 약 30평 규모의 시운전실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만든 약 3m 길이의 1만호 엔진 ‘F404’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시운전실 바깥에 있는 직원이 레버(손잡이)를 올리자 굉음과 함께 엔진 뒤쪽에 붉은빛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F404가 이상 없이 작동된 것이다. 검증을 마친 F404는 공군 TA-50 훈련기에 설치될 예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인적분할을 통해 방위산업(방산), 항공·우주 분야에 집중하는 포트폴리오 구축을 발표하며 단숨에 한화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떠올랐다. 주력 사업과 연관이 적은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를 분리하고 방산과 항공·우주에 집중하는 그림이다. 방산과 항공·우주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책임 진 김동관 한화 부회장이 진작부터 공을 들여온 분야기도 하다. 현재 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지난 2022년 그룹 내 방산 계열사를 통합을 완료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짧은 시간 안에 그룹 내 존재감을 한껏 키운 것은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도 무관치 않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기 엔진 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78년부터다. 항공기 심장 역할을 하는 항공엔진은 기상 상황은 물론 얼음, 먼지흡입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설계 및 생산되는 만큼 기술적 난도가 높다. 진입장벽이 높았음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979년 국내 민간기업 사상 최초로 엔진정비 완수에 성공했다. 이후 45년 동안 전투기를 비롯해 헬기, 선박 등에 설치되는 엔진을 무려 1만대나 생산했다. 끝내 글로벌 3대 엔진 제작사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과 영국 롤스로이스, 미국 프렛앤휘트니(P&W)와 모두 면허생산 사업을 추진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초창기에는 GE와 롤스로이스, P&W 등이 설계한 엔진부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기술 국산화를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우선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해 1995년 엔진연구소를 설립했고, 창원 뿐만 아니라 베트남 하노이, 미국 코네티컷에 제조 인프라를 구축해 생산능력을 강화했다. 엔진 생산 과정에서 넘어야 하는 200여개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창원 사업장 내 9개의 시운전실을 조성키도 했다.
그 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엔진 설계, 부품 제조를 넘어 사후 관리까지 통합 역량을 보유하게 됐다. 우선 유도미사일엔진, 보조동력장치(APU) 등 1800대 이상의 엔진을 독자 기술로 개발 및 생산에 성공했다. 1만호 엔진인 F404의 경우 42개 부품을 국산화에 성공, 국산화율이 36%에 달한다. 사후 관리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금까지 5700대의 엔진을 유지·보수·정비(MRO)했다.
전투기 엔진 제조 경험을 바탕으로 민항기 부품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도 갖췄다. 이날 시험동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스마트팩토리에는 민항기 부품 제작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약 1000억원을 투자해 건설된 스마트팩토리에는 제조는 물론 조립, 열처리, 세척 등까지 대부분의 작업이 로봇을 통해 이뤄졌다. 생산라인 간 부품 운반은 무인차량이 담당했다. 자동화가 완벽히 이뤄지면서 공장에는 10여명의 직원만 근무하고 있었다.
조운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진부품사업부 파트장(차장)은 “전 세계를 살펴봐도 엔진부품 공장을 스마트팩토리로 전환한 곳은 없다”며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이뤄졌던 엔진부품이 스마트팩토리로 인해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통한 ‘선택과 집중’으로 방산, 항공·우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 추진 중인 차세대 전투기 엔진 사업도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재 한국형 전투기 체계 개발사업에 참여, KF-21 보라매 전투기에 들어가는 240여대의 ‘F414’ 엔진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F414는 F404와 비교했을 때 크기는 비슷하지만 출력, 연료 효율성이 높다. F414가 생산될 또 다른 스마트팩토리의 착공식은 15일 진행됐다. 내년까지 약 400억원을 투자해 5000평 규모로 조성되는 공장은 IT 기반 품질 관리와 물류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궁극적인 목표는 F414보다 성능이 뛰어난 첨단 항공엔진은 물론 6세대 전투기 엔진을 독자 기술로 개발, 2029년 150조원까지 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항공엔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 운용 등이 요구되는 6세대 전투기 엔진은 금속 소재 대비 내열성이 우수한 소재로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 독자 전투기 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국 등 6개국 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투기 엔진 분야에서 일부 부품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독자적인 설계 기술을 보유하지 않고 있다. 6개국들이 최근 엔진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만큼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을 국산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연구인력을 2028년까지 800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등에 연구개발(R&D) 센터도 설립할 예정이다. 이 전무는 “엔진 1만대 생산을 기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며 “앞으로 생산할 차세대 엔진 1만대는 자체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6세대 전투기 엔진 개발은 도전적인 목표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45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인프라, 정부 및 협력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