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초격차 기술’ 산실 중앙연구원 르포
음향 수조·공동 수조 등 신기술로 소음 감축 연구
HS4 등 소프트웨어 기술…선주들도 높은 평가
압도적 기술력 바탕 해외 방산 시장 공략 속도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제가 원래 겸손한 성격이지만 이곳은 최고·최대·최신 실험 설비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고 감히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관계자)
지난 15일 경기 시흥시에 위치한 한화오션 중앙연구원 시흥R&D캠퍼스. 2018년 설립 이후 사상 처음으로 중앙연구원 연구시설이 언론에 공개됐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술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전체 직원 330명 중에서 약 70%가 석·박사로 구성돼 있는 중앙연구원은 첨단 기술의 연구개발(R&D)을 통해 한화오션의 ‘조선·방산 초격차’를 이끌고 있는 비밀병기로 꼽힌다.
소음 줄이고 잠수함 은밀성 강화…“방산 초격차 기술 핵심”
한화오션 기술 노하우가 집약된 연구 시설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시선을 모은 곳은 단연 ‘음향 수조’였다.
길이 25m·폭 15m·깊이 10m의 대형 수영장처럼 만들어진 음향 수조는 음파를 활용해 잠수함 및 수상함에서 나오는 수중 소음을 분석하는 첨단 연구설비다. 국내에선 한화오션만 유일하게 음향 수조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은 선박 주변에 공기 방울을 분사해 수중 소음을 최소화하는 시연이 이뤄졌다. 선박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선체에 에어커튼을 형성하는 ‘마스커 에어 시스템’이다. 잠수함이나 군함의 소음 절감은 외부에 발각될 위험을 줄이는 핵심 요소로 지목된다.
함정성능연구팀의 이원병 책임은 “정숙성이 핵심인 잠수함은 소리가 크면 제 기능을 못한다고 보면 된다”며 “생존과 직결된 만큼 더 조용한 함정을 만들기 위해 설계 단계부터 수조를 이용한 계측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곳에서 한화오션 연구진들은 독자적인 소음 저감 기술 발전을 위한 검증 작업을 실시한다. 방산 분야 이외에도 일반 선박 등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음향 특성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다음으로 눈길을 끈 곳은 한화오션의 ‘공동 수조’다. 길이 62m·높이 21m로 지어진 공동 수조는 군사용을 제외하고 만들어진 전세계 상업용 공동수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잠수함의 추진력을 높이면서 소음을 줄이는 연구가 진행된다. 잠수함에서 가장 많은 소음을 발생시키는 원인 중 하나는 ‘캐비테이션’이다. 캐비테이션은 일정한 온도의 물속에서 압력이 급격히 변하면 물이 기체 상태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동 수조에서는 함정과 프로펠러의 생김새에 따라 달라지는 기포를 촬영해 캐비테이션 현상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연구가 이뤄진다. 연구 결과는 선박 설계에도 반영된다. 음향 수조와 함께 한화오션의 방산·조선 기술력의 원천이 되는 설비다.
‘예인 수조’도 한화오션이 자랑하는 핵심 설비 중 하나다. 모형선을 물에 띄우고 상부에 달린 예인차로 조종하면서 선박의 저항·자항·운동·조종 성능을 시험하는 이곳은 길이 300m, 폭 16m로 세계 최대 규모 수준이다.
인공 파도를 만들 수 있으며, 최대 7m까지 수심을 조절할 수 있어 상선과 함정 등 다양한 선박을 대상으로 ‘맞춤형 실험’이 가능하다.
자율운항부터 실시간 선박 정보 플랫폼까지…“소프트웨어 기술 선도”
자율운항 선박 등 소프트웨어 관련 분야도 한화오션 ‘초격차 기술’의 한 축을 담당한다. 중앙연구원 자율운항 관제센터는 한화오션의 자율운항 전용 시험선인 ‘한비’(Han-V)를 원격 제어할 수 있는 설비가 구축돼 있다.
센터 한가운데 위치한 화면에는 선박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이 펼쳐졌으며, 화면 외부에는 엔진 rpm(분당 회전수) 등 선박 제어 장치가 위치했다. 이어 테스트 영상에서는 접근하는 선박을 따라 노란색 박스가 증강현실로 나타났다. 충돌 위험도를 비롯해 가장 가까워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 실시간 정보가 표시됐다. 위험도에 따라 박스 색깔도 흰색, 노란색 등으로 변하면서 직관성을 높였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자율운항 전용 시험선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테스트할 수 있고, 원격 관제가 가능한 디지털 트윈 기반의 시스템이 구축된 점이 경쟁사와의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자율운항 관제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HS4’(Hanwha Smartship Solution&Service) 연구실에서는 한화오션의 독자적인 플랫폼 ‘HS4’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HS4는 선주들을 위해 항만·기상환경 등 데이터 및 선박 장비 고장 여부 모니터링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적용 초기부터 선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작년부터 건조되는 모든 선박에 기본으로 이 플랫폼이 적용되고 있다.
한편 한화오션은 내년 중으로 3D 프린터를 도입해 모형선 제작에 활용할 계획이다. 기존 나무로 제작하는 것 대비 모형선의 제작 기간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다.
경영 위기 속에도 과감한 ‘기술 투자’…“방산 수출 선봉장”
지난 5월 한화그룹에 인수된 한화오션은 최근 2조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오는 2040년까지 매출 30조원 이상, 영업이익 5조원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조원 가운데 방산 설비 확충 및 해외 사업장 구축에 9000억원, 친환경 스마트십 개발에 6000억원, 해상풍력 단지 개발에 2000억원, 스마트 야드 구축에 3000억원 등을 각각 투입할 예정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중앙연구원의 R&D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중규 한화오션 중앙연구원장은 “저희가 원래 서울 중심부에 연구소가 있었는데 마땅한 시험 설비가 없었다”면서 “그 당시 전 회사가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흥R&D 센터를 개소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장은 “이번 투자를 통해 내부 방산 생산설비를 확충하는 데 중점적으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장 구축에도 나설 예정”이라면 “한화오션 중앙연구원이 (초격차 방산의) 산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최근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및 공학계열 학부와 대학원생 150여 명을 대상으로 가진 채용 설명회에서 한화오션 강점에 대해 “조선 3사 중에 방산을 한화만큼 잘하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한화그룹은 이미 여러 국가에 수출하며 방산 경쟁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에 한화오션도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부회장은 “연구소를 확대할 계획이 있다”며 “기술 집약적인 기업을 위해서는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기술 투자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