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디지털·플랫폼 혁신 가속 발판 마련
금융지주사들 비이자 수익 확대의 길 열려
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개정 논의
금융지주사들의 비금융업종 투자 한도가 최대 15%까지 풀리면 금융사들의 디지털·플랫폼 혁신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 계열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금융지주가 ‘통 큰 베팅’을 직접 하게 될 경우, 흩어져있던 투자집중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 ‘이자장사’로 비판받아온 사업 구조 전환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금융지주 비금융회사 보유한도 5%→15%, 플랫폼 혁신 가속화=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금융지주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금융지주사들이 비금융회사 주식을 기존 5%에서 최대 15%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해온 금산분리 완화 중 금융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요구했던 ‘자회사 투자한도 제한 완화’가 시작된 것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지주의 업무범위가 한정되고 계열사간 데이터 활용이나 업무위탁도 제한되고, 금융지주 내 비금융회사를 둘 수 없어 빅블러(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의 흐름을 따라잡기 어려웠다”며 “금융지주 규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투자 제한 완화로 지주사들이 가장 먼저 기대하는건 플랫폼·디지털 등 혁신 가속화다. 그동안에는 투자가 허용되더라도 금융밀접업종에 5% 제한으로 묶여있어 이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해외 금융사들이 핀테크 등 플랫폼 인수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키워온 것과 대조된다. 그나마 은행, 보험 등에서는 최대 15%까지 투자가 가능했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계열사 간 별도 투자가 이뤄진 탓에 지주 차원에서 조율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계열사별로 제한적으로 투자를 할 뿐 지주 차원에서 전략적 접근이 어려웠다”며 “계열사들이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 이를 컨트롤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금융 업무 풀어주면, 금융 앱서 카드포인트로 ‘배달’ 가능=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부동산, 통신, 유통 등 생활서비스 업체 등을 직접 인수할 수 있다. 비금융 혁신 서비스로 꼽히는 신한은행의 ‘땡겨요’나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인 ‘리브엠’ 등을 지주 차원에서 ‘투잡’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경우 금융사 플랫폼 내에서 직접 배달이나, 쇼핑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이 당면한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기 예대마진으로 큰 이익을 거둔 금융사들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제도와 관행 개선에 나설 것을 요구해왔다.
국내 금융시장의 성장 한계를 딛고 해외로 진출해 글로벌 금융사들과 경쟁을 돕기 위한 측면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 규제 혁신의 목표는 방탄소년단(BTS)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금융산업의 새로운 장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사업은 국내 금융회사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벤처투자 등 위축됐던 모험자본 활성화 기대, 정책호응도 높아질 것”= 신사업 확대로 인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호응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시장 혁신과 투자자 신뢰 제고로 모험자본 활성화’를 국정 과제로 제시하며 관련 대책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지주사 운신의 폭이 한정적이다보니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어려웠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벤처투자를 하고 싶어도 재무적인 지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15%까지 투자가 열려있어도 과감한 투자가 어렵다”며 “(국책은행이야) 정부가 하라고하면 하겠지만,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각종 건전성 요구 등을 받는 상황에서 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융당국이 이번주 내놓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방안과 맞물려 민간의 벤처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당국은 은행의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한도 규제를 자기자본의 0.5% 이내에서 1.0% 이내로 완화해 민간은행의 벤처투자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지주 관계자는 “구체적인 방안은 나와봐야 알겠지만, 15%까지 재무적 투자자(FI)와 전략적 투자자(SI)까지 뛰어들 수 있다면 좋은 투자처를 발굴해 상생금융을 폭넓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공언했던 경쟁력강화 방안 중 가장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대책이 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완화할 규제를 여러 방안으로 살펴보고 있다”며 “다음달 중 해외진출 확대방안 등도 함께 발표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