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신촌 일대 스터디카페 돌아보니
방학 맞은 대학가에 ‘공부하는 직장인’
“의대 입시나 ‘사짜 자격증’ 준비해”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박지영·안효정·이준태 수습기자] “요즘 손님 10명 중 7~8명 정도가 취준생·대학생이 아니라 직장인이에요. 직장인이 매출의 70%를 차지합니다.” 지난 29일 오후 3시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A 스터디카페. 인근 대학인 연세대 정문로부터 70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이 스터디카페의 주요 손님은 직장인이다.
A 스터디카페 점주는 “매달 조금씩 다르지만 요즘은 회계사 공부를 하는 직장인이 많다”며 “의대 준비하는 직장인 손님 한 명은 직장과 병행하면서 공부한다고 심하면 하루에 1~2시간 잔다더라. 그 정도로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대학가 스터디카페의 떠오르는 단골 손님이 됐다. 전문직 열풍에 뒤늦게 의대 입시에 뛰어들거나 회계사·노무사 자격증 등 ‘사짜 직업’을 가려는 직장인이 늘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여름방학이면 비수기에 접어드는 스터디카페도 직장인 손님으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30일 헤럴드경제는 지난 29일 신촌·홍대·이대 등 대학가 일대 스터디카페 16곳을 돌면서 전체 손님 대비 직장인 비율을 물어봤다. 그 결과 적게는 10~20%, 많을 경우 최대 80%까지 직장인 손님이 있다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들은 대학생이나 취준생과 달리 시간 단위 이용권 대신 몇 달치 이용권을 한꺼번에 사고, 저녁이나 주말에 두꺼운 책을 들고 공부한다는 특징이 있다.
B 스터디카페 점주는 “직장인은 옷부터 다르다. 주로 비즈니스 캐주얼룩을 입는데 직장인은 대학생과 달리 직장인 티가 난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삶의 고단함이 있다”고 말했다. 합정역 인근에 위치한 C 스터디카페 점주는 “10명 중 3~4명이 직장인 손님인데 대학생들이 보는 책과 달라서 직장인 인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러 일부러 모교 근처로 오는 직장인도 있다. 이화여대 근처 D 스터디카페 사장은 “직장인 손님 중 이대 졸업생이 많고 주변 대학인 연대나 서강대 졸업생도 있다”며 “다른 스터디카페랑 다르게 17세 이상만 사용 가능한 곳이라 직장인이 비교적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들마저 전문직 열풍에 탑승한 가장 큰 이유는 고용안정성 때문이다. 다만 전문직을 위해 현 생업까지 포기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있어 퇴근 후 공부를 하고 있다.
세무사 합격 전까지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는 박모(27) 씨는 “다녔던 종로 스터디카페에도 직장과 세무사 공부를 병행하는 남성이 있었다”며 “아침 7시 전에 와서 8시 45분에 나가고, 저녁 6시 반쯤 다시 와서 11시~12시까지 공부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전문직 준비 이유에 대해 “세무사는 개업하면 쭉 할 수 있는 건데, 일반 회사는 중간에 잘릴 수도 있고 고용이 불안정할 수 있으니 준비했다”고 말했다. 감정평가사를 준비하는 백모(27) 씨는 “일반 직장인들보다는 전문직이 이직과 휴직도 자유롭고, 시간 투자한만큼 연봉도 높다. 길게 보면 정년도 없으니까 노후대비도 된다”며 “물론 자격증 시험이 1년에 한 번 있으니까 떨어지면 어쩌나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다”고 말했다.
스터디카페를 찾는 직장인 연령대는 20~30대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40대 손님도 있었다. 서강대 인근 E 스터디카페 사장은 “직장인 40대 지인이 퇴직 후 인생을 준비한다며 공부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까지 가세하면서 전문직 시험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공인회계사나 법학전문대학원 지원자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접수된 제58회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응시인원은 지난해보다 527명 증가한 1만5940명이었다. 응시인원 집계를 시작한 1984년 이래로 역대 4번째로 많은 숫자다. 또 지난해 공인회계사 응시자 평균 연령은 지난해 만 26.3세보다 높아진 만 26.5세로, 졸업후 연령대가 많이 포함된 20대 후반이 주로 시험에 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를 위한 법학적성시험 접수자도 1만7360명으로 지난해보다 2780명 증가해 법학적성시험 역사상 가장 높은 지원자 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원의 고용 불안정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전문직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에 근무한다 하더라도 일 자체도 힘들고 은퇴도 빠르다.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미래를 예상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태다”며 “전문직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전문성을 가진다면 직장이 흔들리더라도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전문직 인기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고령화시대가 됐는데도 기업 문화에는 정년이 있다. 40대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며 “반면 자격증을 취득하면 은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신체능력 등이 받쳐준다면 언제까지 활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