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크리스탈’ 작가 앨리스 포츠 신작 ‘인퍼스파이어’

편집자주

지구촌 이색적인 장소와 물건의 디자인을 랜 선을 따라 한 바퀴 휙 둘러봅니다. 스폿잇(Spot it)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으면 이기는 카드 놀이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구찌 가방에 땀 크리스탈을 붙인 작품.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구찌 가방 위에 '땀 크리스탈'을 만드는 과정.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야구 모자에 반짝 반짝 무색의 투명한 크리스털이 촘촘히 박혀있다. 래퍼가 모자의 챙을 반쯤 돌려서 삐딱하게 쓸 법한, 힙한 야구모자. 그런데 모자에 붙어있는 건 유리나 돌, 하물며 플라스틱조차 아니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여느 보석과 달리 그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 무정형이다. 그렇다면 얼음 조각? 설탕? 소금? 오답 행진이 이어진다. 모자 제작자가 밝힌 정답은 놀랍다. 그것은 사람 몸에서 분비된 땀으로 만든 결정체다.

모자를 쓴 채 6주간 생활하면 모자에 땀이 배인다. 모자 섬유 속 땀을 씨앗 삼아 특수한 용액 처리 과정을 거치면 10시간 뒤 이렇게 ‘땀 크리스탈’이 달린 모자로 바뀐다.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27일(현지시간)부터 10월 9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픽션’ 전시회에 전시 중인 모자 시리즈다. 영국 런던 태생 1990년대생 작가 앨리스 포츠(Alice Potts)의 작품 ‘인퍼스파이어(INPerspire)’다.

인퍼스파이어는 사람 8명이 6주 간 일상 생활을 하면서 흘린 땀으로 모자의 장신구를 만든 프로젝트다. 작가는 “사람들은 운동하면 시간 당 0.5~2리터,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하루 3리터 가량의 땀을 흘린다. 땀 1리터에선 10~50g의 포화 소금 용액을 얻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미국 디자인매체 디자인붐과의 인터뷰에서다.

모자를 쓴 채 6주간 생활하면 모자에 땀이 배인다. 모자 섬유 속 땀을 씨앗 삼아 특수한 용액 처리 과정을 거치면 10시간 뒤 이렇게 ‘땀 크리스탈’이 달린 모자로 바뀐다.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땀 크리스탈’ 장식 모자를 만드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프로젝트 참가자 8명이 각자의 모자를 쓰고 6주 이상 생활했다. 이들이 흘린 땀은 모자의 섬유에 스며들어, 결정체로 자라날 일종의 '씨앗'을 형성한다. 땀이 모이면 땀 속의 외부 불순물을 분리하고, 정화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일단 이 씨앗이 생기면 소금 용액 안에서 성장하고 변형되는 데 10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특수한 정련의 과정이 있다라기 보다 소금 용액 제조에 비법이 따로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 레시피를 공개하지 않았다.

모자를 쓴 채 6주간 생활하면 모자에 땀이 배인다. 모자 섬유 속 땀을 씨앗 삼아 특수한 용액 처리 과정을 거치면 10시간 뒤 이렇게 ‘땀 크리스탈’이 달린 모자로 바뀐다.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흥미로운 건 이 ‘땀 크리스탈’의 구조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여성의 땀은 매우 뾰족한 결정체를 만드는 반면 남성의 땀은 그 보다는 평평한 봉우리 형태로 자라난다.

이렇게 해서 지구 상에 단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는 나만의 오트퀴트르(고급 맞춤 옷) 모자가 탄생한다.

땀도 지속가능한 패션 액세서리가 된다?

앨리스 포츠의 2018년 영국왕립예술학교 졸업작품. 낡은 발레 슈즈에 배인 땀을 특수 처리해 크리스탈로 배양했다. [포츠 인스타그램]

포츠는 2021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땀이야말로 신체 분비물 중 가장 과소평가됐다”며 땀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땀으로 어떤 질환이 있는지, 식단에 당분은 얼마나 있었는지 몸 전체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땀 냄새가 지독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땀은 몸을 깨끗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한다”고 말했다.

신진 작가인 포츠는 2018년 자신이 다닌 영국왕립예술학교(London’s Royal College of Art) 졸업작품 전시회에 ‘땀 크리스탈’을 처 선보였다. 당시 졸업 작품은 발레리나의 열정과 고단함이 묻어나는 낡은 발레 슈즈에 붙인 ‘땀 보석’이었다. 포츠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이 작품 사진에 “땀 흘리는 다이아몬드, 지속가능한 패션 액세서리”라는 문구를 달았다. 인체의 분비물이야 말로 진정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패션 재료라는 뜻이다. 그의 졸업작은 가디언, 뉴욕포스트, 데일리메일 등 여러 언론들에 보도되는 등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포츠는 어릴 때부터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의 등에 땀이 마르면 생기는 염선을 유심히 봤다고 한다.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 액세서리를 전공한 그는 수학, 화학, 기하학에도 관심을 두던 터에 대학에서 바이오 엔지니어 디자이너 헬렌 스타이너(Helene Steiner)의 초청 강연을 들은 뒤 생체재료학(Biomaterialist)의 세계에 푹 빠졌다.

앨리스 포츠.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생체재료학이란 자연에서 유래하거나 금속 성분이나 화학적 방법으로 합성할 수 있는 금속이나 세라믹 재료를 말한다.

처음 땀 크리스탈을 만드는 데 진땀 꽤나 뺐다. 포츠는 “처음 1년 동안은 체육관에서 내 몸 전체를 랩으로 싸고 그 위에 점퍼 몇 개를 겹겹이 껴입은 채 ‘계단 오르기’ 운동기구에 올라 타야 했다”며 “땀이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 땀을 조금씩 긁어 모아 용기에 담았다”고 당시 고충을 털어놨다.

그렇게 교우들이 패션 스튜디오에서 재능을 갈고 닦는 동안 그녀는 주방에서 땀 크리스탈을 만드는 레시피를 만들고 노하우를 쌓았다.

그러나 그녀도 땀에 관한 열정을 멈춰야 할 때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전세계가 침, 땀, 비말 등 감염 매개물에 극도의 공포감을 갖던 시기다. 포츠는 “코로나19 감염자의 땀으로 만든 결정체가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언젠가 미래에 깨져서 다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되는, 그런 악몽을 꿨다”며 웃었다. 그렇게 2년 간 강제 휴식기가 찾아왔다.

3월의 장미, 4월의 데이지, 5월의 블루벨, 6월의 금잔화를 섞어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오른쪽)과 바이오플라스틱 스팽글로 리사이클링 한 아디다스 가방. [앨리스 포츠 인스타그램]

그리고 팬데믹은 또 다른 기회의 창을 열었다. 감염병 봉쇄 기간에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어머어마하게 늘고 있었던 것. 그는 바이오플라스틱에 눈을 돌려 새로운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활용한 크리스탈, 꽃잎이나 채소 찌꺼기, 자연 폐기물 등으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 스팽글(반짝이는 얇은 장식조각) 등 무궁무진했다.

이 시기 포츠는 바이오플라스틱 스팽글로 가방을 수선했는데, 근사한 작품이 됐다. 바이오플라스틱 스팽글의 소재는 자연물에서 따왔다. 가령 3월에 수집한 장미, 4월 5월에 데이지와 블루벨, 6월에는 친구 집 정원에 핀 금잔화를 섞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업사이클링’을 하지만, 대부분 이미 만들어진 인공재료를 이용한다. 자연 생물에서 얻는 생체재료들이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생체재료에 돈 모이고 있다는데…

미국 생명과학 회사 비트로랩스의 바이오리액터(왼쪽)과 실험실에서 만든 송아지 가죽, 실험실 가죽으로 만든 시계 밴드 제품. [CellAgri 유튜브채널 갈무리]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재료들에 ‘돈’이 모이고 있다. 실험실에서 기른 ‘대체가죽’, 다시마 해초에서 뽑아낸 원사, 무독성 염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박테리아 등이다. 이러한 생체재료들은 의류 재료의 다양성을 넓힐 뿐 아니라 자연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데서 오는 재료 부족 문제를 해결해준다. 또한 재생가능하고, 생분해되며, 공정 과정에서 물이나 화학물질이 덜 든다.

비트로랩스 공동창업자 잉바르 헬가손.

포브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밀피타스시에 있는 생명과학 회사 비트로랩스(VitroLabs)는 지난해 5월 약 582억원(46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글로벌 명품 그룹 케링(Kering),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IT·바이오 전문 벤처 캐피털 코슬로 벤처 등이 참여했다.

이 회사는 2016년에 소의 세포들로부터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가죽을 만들기 위해 창업했다. 다른 회사의 ‘대체가죽’이 합성피역이나 식물의 콜라겐 성분 사용하는데 반해 이 회사는 진짜 소(또는 타조나 악어도 가능)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회사는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약간의 세포만을 수집해 이를 실험실 내 바이오리액터에서 배양시켜 두툼한 가죽을 만들어낸다. 배양에 드는 시간은 3~4주다.

전통 동물 가죽 공정 절차를 표현한 그림. (왼쪽부터)동물을 2~3년 간 기르고, 도살해 가죽만 벗겨낸다. 가죽을 잘라내고 여러 화학물질과 다량의 물이 들어가는 무두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만 5~7일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염색으로 마감 처리한다. [CellAgri 유튜브채널 갈무리]

실험실 동물 원피는 무두질을 거쳐 의류에 쓰이는 가죽 소재로 변신한다. 전통적인 무두의 과정은 원피의 불필요한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다량의 물과 발암 가능성도 있는 수많은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회사는 기존 방법 대비 화학물질을 90% 적게 사용하는 공정을 개발했다고 한다.

또한 실험실에서 딱 필요한 만큼의 두께로만 원피를 키우기 때문에 무두 과정 자체가 전통 방식 보다 짧다. 약간의 세포들을 수집해 이를 실힘실에서 배양시켜 두툼한 가죽을 만들어낸다.

비트로랩스 가죽 공정 절차를 표현한 그림. (왼쪽부터) 건강한 동물 세포를 채취해 바이오리액터에서 기른다. 배양에 3~4주가 걸린다. 이어 무두 과정은 전통 방식에 비해 화학물질을 90% 덜 쓰고, 시간도 사흘 밖에 걸리지 않는다. [CellAgri 유튜브채널 갈무리]

비트로랩스 공동창업자 잉바르 헬가손(Ingvar Helgason)의 이력도 남다르다. 그는 패션 디자이너를 목표로 고향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2006년 런던에 정착해 패션 회사를 차렸다. 우연히 모피 경매회사와 일할 기회가 생기면서 모피와 가죽의 대체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했다. 평소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했던 것도 동기가 됐다. 이후 실험실에서 피부를 키우는 방법에 관해 몰두했다. 이어 킹스칼리지런던 대학교 재료공학 교수와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다시마 해초를 원사로 만드는 앨지니트(Algiknit)는 지난해 6월 스웨덴 패션기업 H&M그룹의 투자게열사 H&M 코랩과 여러 벤처투자사들로부터 모두 1300만달러(172억원)의 투자를 받는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다시마 해초에서 압출된 원사를 생산한다. 다시마 해초 원사로는 직물을 짤 수 있고, 이 직물은 천연 염색이 가능하며, 패션, 인테리어 가구, 자동차 소재 등에 쓰인다. 생분해성으로 친환경적이다.

펀딩을 주도한 콜라보레이티드 펀드의 파트너 소피 바칼라는 “섬유 산업은 막대한 오염과 물 집약적인 산업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며 “앨지니트의 시리즈A 펀딩을 이끌어 세상을 더욱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끄는 기술에 투자하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