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 르포
전투기·전차 대신 서버·컴퓨터 가득
함정 전투체계, 전술정보통신체계 등
첨단 방산전자 시스템 개발·양산·운영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얼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물론 우리는 플랫폼 업체가 아니에요. 그렇지만 무기체계의 두뇌, 눈과 귀와 입이 되는 장비는 우리가 만들죠. 예컨대 차륜형 대공포가 있다고 합시다. 전자광학추적장비(EOTS)나 사격통제장치가 없으면 사격을 못 해요. 우리가 없으면 무기가 있다고 한들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거죠.”
지난달 27일 찾은 경북 구미시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은 방산업체 현장 같지 않았다. 주요시설마다 전투기나 전차, 미사일 대신 대형 서버와 고성능컴퓨터(HPC), 모니터, 각종 기계가 가득했다. 건물 중간중간 주차돼 있는 미완성 군용차량만이 방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곳임을 알려줄 뿐이었다.
사명에서도 드러나듯 한화시스템은 방산전자업체다. 레이더를 포함한 각종 센서와 지휘통제·통신, 전투체계 등을 개발하고 있다. 방산품에 알맹이를 채워 넣는 작업인 셈이다. 사업장에서 실제 무기를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먼저 향한 함정 전투체계(CMS) 시험장은 입구부터 IT(정보기술)센터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함정 전투체계는 레이더, 어뢰, 함포, 미사일 등 다양한 장비를 연동해 위협체를 탐지·분석하고 최적의 대응방안을 실행하도록 하는 통합 운영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군함의 두뇌인 셈이다. 한화시스템은 우리 해군의 모든 함형에 최적화된 전투체계를 생산·공급하고 있다.
해양 소프트웨어 랩(연구실)에선 시스템 개발과 운영, 유지를 위한 서버와 컴퓨터로 소스코드(프로그램 설계도)를 만들거나 전투 시스템을 시뮬레이션하며 보완사항 등을 살핀다고 한화시스템 측은 설명했다.
현장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체계 설계와 조립은 공장에서만 1년가량 소요된다. 이후 함상으로 작업자 열댓 명을 파견해 설치와 운용 테스트까지 시행한다. 주문부터 최종 납품까지 15개월, 길게는 3년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다.
실제 전투체계와 동일한 환경의 레퍼런스 시스템 시험장도 마련돼 있는데 이곳에선 후속지원을 위한 테스트가 이뤄진다. 언뜻 오락실 게임기 같아 보이는 콘솔이 함정 내에도 똑같이 설치돼 있다고 현장 관계자는 귀띔했다. 생산 만큼이나 운용·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잘한 오류 개선은 물론 기능·성능 개량도 책임지고 진행한다고 한화시스템은 강조했다.
한화시스템은 국내 조선소와 협업을 통해 함정 전투체계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로 수출한 바 있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상호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무인수상정, 무인잠수정 등 해양무인체계도 엿볼 수 있었다. 한화시스템은 국내 업체로는 유일하게 군집 무인수상정 운용기술을 개발 중인데 AI(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해 인간과 대등한 수준으로 소통·교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이는 한화시스템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다계층 초연결 종합체계 구축과도 맞닿아 있는 기술이다.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시험장에선 우리 군에 납품하는 통신장비를 조립·점검·시험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TICN은 군 통신망의 고속·유·무선 데이터 전송을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기지국이 돼 전장에서 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선 군용차 뒤편에 실을 통신쉘터 제작이 한창이었다. 내부에는 각종 전술정보통신체계가 빼곡하게 채워진다. 개별 장비는 챔버에서 고온과 저온, 진동, 충격, 낙하 등의 시험을 거치는데 악조건도 견뎌야 하는 만큼 성능시험을 다양하고 꼼꼼하게 진행한다고 현장 관계자는 언급했다.
손바닥만 한 휴대용 통신 단말기도 만들고 있다.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빠른 데이터 전송에 영상통화 기능까지 갖춘 신식이었다. 현장 관계자와 직접 단말기를 체험해보니 끊김 없이 화질도 깨끗했다.
시스템 조립동에선 폴란드로 수출되는 K2 전차, K9 자주포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에 들어가는 사격통제시스템을 개발·생산하고 있었다. 함정용 전자광학추적장비(EOTS)와 적외선 탐색추적장비(IRST)에 대한 시험도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장에서 눈 역할을 하는 핵심 구성품이다.
특히 추적장치의 경우 함정이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목표물을 흔들림 없이 추적할 수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요동 모사기 위에 설치돼 있었다. 모사기의 전원을 켜자 장비가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그러나 모니터 속 목표물은 한 치의 움직임도 없었다. 40여년의 전자광학 장비개발 노하우가 담겨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처럼 주요 무기체계의 핵심 요소를 담당하는 한화시스템은 K-방산의 숨겨진 주역이다. 말레이시아 훈련함, 이라크 FA-50, 인도 K9 자주포, 아랍에미리트(UAE) 천궁Ⅱ, 필리핀 초계함 전투체계 등 굵직한 방산 수출에는 모두 한화시스템의 체계, 장비 등이 포함돼 있다. 한화시스템의 저력은 K-방산 성장과 함께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업계 분석도 나온다.
현재 삼성전자 사업장 일부를 임차해 운영 중인 한화시스템은 오는 2025년 상반기 새 사업장을 건립해 이사한다. 중장기 생산 능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새 둥지에서의 출발을 기점으로 육해공에 우주까지 다계층을 초연결 하는 위성종합체계업체로 거듭나겠다는 게 한화시스템의 구상이다.
MRO(유지·보수·정비)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무기체계의 예방 정비, 재고 확보, 단종 대처 등으로 이어지는 표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화시스템은 네트워크 보안 관련 인력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이기택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장(상무)은 “육해공 무기 플랫폼에 들어가는 전투체계와 센서 등을 제공하는데 독보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고 우주·사이버 분야로도 역량을 확장하고 있다”며 “중동·동남아 수출이 기폭제가 되어 주요 부품으로뿐만 아니라 단독 장비로도 수출이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