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 우주정거장까지 곰팡이세상

밝혀지지 않은 곰팡이 300~500만종

분해자·생태계 순환자로서 역할 막중

세포 대사 기능 같아 항셍제 개발에 공

대사물질 다양 “발견되지 않은 보물섬”

소통과 협력의 삶,우리에게도 시사점

[북적book적]곰팡이와 우리는 많이 닮았다
“모든 생명의 삶은 ‘관계’로 귀결된다. 생명이 시작되기 위한 조건이 경계를 나눠 환경과 세포가 분리되는 것이지만,동시에 소통의 채널이 열려 있지 않은 세포의 운명은 곧 죽음이다. 생명은 자연에 자신들의 경계선을 긋고 살지만, 주변과 나누고 소통하는 법을 터득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마이코스피어’에서)

전 세계 54개국에서 500종 이상의 양서류를 집단 폐사시킨 항아리곰팡이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특이하게 수중생활을 하는 이 곰팡이는 1년에 20킬로미터 이상을 이동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파나마로, 남미 이곳 저곳을 휩쓸며 개구리를 몰살시키는 이 곰팡이는 피부에 붙어 피부 조직을 파괴하는데 피부로 호흡하는 양서류에게는 치명적이다. 이 곰팡이의 기원을 놓고 국제적으로 대대적인 역학 조사가 진행됐는데, 항아리곰팡이의 조상이 한반도란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놀라게 했다.

1911년에 채집된 개구리에서 항아리곰팡이가 발견됐는데, 이는 이미 오래전에 한반도 개구리가 곰팡이에 감염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개구리는 항아리곰팡이에 대한 면역 세포 수용체를 갖고 있었다. 한반도 개구리가 어떻게 저항성을 갖게 됐는지 밝히면 세계의 수많은 개구리를 구하는 게 가능하다.

해충박멸의 일등공신 박쥐를 떼죽음으로 몰고 가는 곰팡이도 걱정거리다.

박쥐는 생태계에 꼭 필요한 존재인데 안타깝게도 1만7000종의 박쥐가 멸종위기다. 2006년 2월 미국 동부 올버니 한 동굴에서 박쥐 수천 마리가 코가 하얗게 변한 채 떼죽음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0년간 북미 박쥐 700만 마리가 몰살 당했다. 이 일은 박쥐가 동면에 들어가 잠든 사이에 일어났는데 추울수록 힘이 나는 흰곰팡이가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박쥐를 구할 방도가 없다.

[북적book적]곰팡이와 우리는 많이 닮았다

곰팡이에 대한 우리의 앎은 단편적이다. 식품을 부패하게 만들거나 페니실린이나 치즈 등 곰팡이의 2차대사물에 대한 관심 정도다. ‘곰팡이 박사’ 박현숙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는 ‘마이코스피어’(계단)에서 동식물을 분해하면서 자연의 순환을 돕는 삶과 죽음의 중재자로서 “곰팡이가 없으면 지구 생태계도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외면 당하고 잘 보이지 않지만 세상 모든 생명의 성장과 멈춤, 삶과 죽음의 중심에 있는 신비하고 강력한 힘을 지닌 곰팡이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지금까지 분류된 곰팡이는 9만 9000종으로 학자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곰팡이가 300만~500만종에 이를 것으로 본다.

곰팡이는 진화과정에서 육상생활을 가장 먼저 시작한 생물 중 하나로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이나 조류와 공생하며 지의류를 만드는 곰팡이가 주인공이다. 생태계에서 곰팡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청소부 즉 분해자로서 죽은 유기물을 분해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데 있다.곰팡이가 등장하기 전엔모든 게 썩지 못하고 그대로 묻혔다. 석탄은 양치식물이 그대로 묻혀 만들어낸 것이다.

몇몇 곰팡이는 동식물에 치명적인 병을 일으키는데 식물이 걸리는 질병의 80퍼센트 이상이 곰팡이가 일으킨다. 기회감염성 곰팡이는 면력력이 감소한 환자들을 공격,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곰팡이가 우리와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생명의 나무에서 동물, 곰팡이, 원생생물 일부는 후편모생물이라는 그룹에 묶여 있는데, 14억 년에서 9억 년 전쯤 등장한 뒤쪽에 꼬리가 하나 달린 생물에 속한다는 걸 말한다. 동물의 정자와 항아리곰팡이의 유주자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둘의 유전 관계가 가깝다는 얘기다. 발현되는 단백질, 세포의 기능과 대사 방식도 비슷해 인간의 유전병이나 암 발생 기작을 연구할 때 곰팡이의 유전자를 쓰기도 한다. 반면 서로 닮은 점이 많다 보니 곰팡이병에 효과적인 항진균제를 찾기 어렵다.

곰팡이가 세균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차대사물질은 의약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페니실린 뿐 아니라 세팔로스포린, 시클로스포린, 스타틴 등은 곰팡이 유래 물질로 저자는 “곰팡이가 만드는 다양한 대사물질의 세계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보물섬과 같다”고 말한다.

기생하고 공생하는 곰팡이는 식물과 동물, 산과 들, 강과 바다, 우주정가장의 파이프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곳 어디에나 있다. 토양 1제곱미터에는 지구 둘레의 절반을 휘감을 곰팡이가 존재하고 우리 몸에도 수많은 곰팡이가 살아간다.

책에는 곰팡이의 위력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들이 소개되는데, 그 중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인터스텔라’도 있다. 영화는 모래 폭풍이 불어오는 흙 먼지 투성이의 황량한 옥수수밭과 집을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곰팡이 습격 가능성을 시사한다. 쿠퍼 가족은 모래 바람에 날아오는 곰팡이 포자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고 곰팡이를 제거하기 위해 밭에 불을 지른다. 저자는 한 가지 종으로 재배할 경우 치명적인 곰팡이의 습격으로 단번에 땅이 황폐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박 교수는 “수 억년 동안 곰팡이는 지구에서 일어난 수많은 화학반응의 중심에 있었으며 곰팡이의 정체성은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독성이 있는 대사물질을 분비, 식물을 고사시켜 만들어낸 숲속 ‘요정의 고리’,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과 곰팡이, 캐릭터 쉬무와 닮은 사랑에 빠진 효모, 영화 ‘아바타’의 숲을 닮은 곰팡이 네트워크, 버섯을 모아 포장재와 집까지 짓는 이야기 등 곰팡이의 세계, 마이코스피어가 신기하고 놀랍다. 자신만의 신호로 소통하며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미생물이 사는 법은 깊은 공감을 준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마이코스피어/박현숙 지음/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