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대통령 발언 확인하기 어렵다” -문체부 국ㆍ과장 인사는 장관 책임…대통령 인사 지시 의혹 부인 -현 정부 잇딴 미스터리 인사 배경 놓고 신뢰도 흔들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청와대 집무실로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이 부처 특정 국ㆍ과장의 이름을 거론, 직접 교체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유 전 장관이 5일 “정확한 정황 이야기다”라고 폭로해 파장이 겉잡을 수 없이 증폭될 전망이다. 이들 국ㆍ과장은 ‘비선(秘線) 실세’로 회자되는 정윤회 씨의 딸이 출전한 승마대회에서 판정시비가 일자 감사를 진행한 인물들로, 박 대통령은 감사 결과에 불만을 가진 정 씨 측의 민원을 청취한 뒤 이런 지시를 내린 것 아니냐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유출로 가뜩이나 주요 기관 인사에 ‘비선’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나쁜 사람’ 발언 파문은 현 정부에서 단행한 인사 전반에 대한 신뢰를 통째로 흔들고 있다.
▶朴대통령, 정윤회 딸까지 챙겼나=유진룡 전 장관은 이 날짜 조선일보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박 대통령의 문체부 국ㆍ과장 교체 지시 발언이 “맞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정최고책임자가 일개 부처 국ㆍ과장 인사를 직접 지시를 했다는 게 드러난 것 뿐만 아니라, 정윤회씨의 딸과 관련한 문제에 박 대통령이 적극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파문의 진앙은 승마선수인 정 씨의 딸 정모(19)양이 출전한 지난해 4월의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마 국가대표를 목표로 한 정양은 이 대회에서 라이벌인 김모 선수에게 우승을 넘겨줬는데, 이를 두고 판정시비가 일었고 잡음이 계속되자 문체부가 같은 해 6월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조사는 당시 문체부 노모 체육국장과 진모 체육정책과장이 진행했다. 유 전 장관은 이와 관련, “조사 결과 정윤회 씨 쪽이나 그에 맞섰던 쪽 모두 다 나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청와대에) 올린 건데 정씨 입장에서는 상대방만 처리해 달라고 요구한 것을 (우리 문체부가) 안 들어주고 자신까지 대상이 됐다고 해서…. 괘씸한 담당자들의 처벌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노 국장ㆍ진 과장은 박 대통령의 인사 조처 지시가 있고 나서 한 달쯤 뒤 각각 중앙박물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발령이 났다.
특히 유 전 장관은 이런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김종 문체부 2차관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도 밝혀 주목된다. 그는 “김 차관과 이재만 비서관은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면 정확하다. (인사청탁 등은) 항상 김 차관이 대행했다”며 “김 차관의 민원을 이재만 비서관이 V(대통령 지칭)를 움직여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는 문제의 국ㆍ과장 인사에 ‘정윤회씨 측→이재만 비서관→박 대통령’의 순서로 개입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과 1980년대부터 교류를 해 온 걸로 알려진 정윤회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란 분석을 하고 있다. 최 씨는 박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였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靑, 朴에 확인 못해 전전긍긍=청와대는 이번 파문과 관련,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의 내용이 아니다”, “인사는 담당 부처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관련 의혹을 처음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사(3ㆍ4일) 이후 지속되고 있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의 ‘나쁜 사람’ 발언 등을 대통령 본인한테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일축하면서 문제의 국ㆍ과장 인사는 당시 유 전 장관의 책임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혀 박 대통령의 지시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의 발언(나쁜사람 및 인사조처 지시) 확인이 어렵다는 게 대통령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건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확인이라는 절차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를 한 것”이라며 “인사는 장관의 책임하에 하는 것이라는 걸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아울러 유 전 장관의 폭로에 대해 법적조치를 할 것이냐는 질문엔 “결정된 바 없다”고 했고, 김종 2차관이 인사청탁을 대행했다는 유 전 장관의 발언 관련해선 “김종 차관이 법적 조치를 한다는 보도를 봤다”고 말했다.
▶또 등장한 수첩…밀실인사 후폭풍으로 ‘정윤회-박지만 파워게임설’ 자초=이번 파문엔 수첩이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작년 8월, 유진룡 전 장관을 부른 자리에서 ‘나쁜 사람’ 발언을 하기에 앞서 수첩을 꺼내 노 국장ㆍ진 과장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인사파동의 원인으로 지목된 ‘수첩인사’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작년과 올해에 걸쳐 주요 기관의 핵심 인사가 무성한 뒷말을 남긴 채 진행된 점은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문건 파문을 계기로 정씨와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회장간 파워게임의 산물이라는 분석과 맞물려져 의구심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10월, 취임 1년만에 경질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박지만 회장과 중앙고ㆍ육사 동기로, 해당 인사엔 정윤회씨 측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돌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작년 8월 중도낙마했는데 이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의욕적으로 수사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울러 유진룡 전 장관도 현 정부에서 ‘세월호 참사’ 대책ㆍ인사 문제 등으로 청와대 주요 인사들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 올 7월, 후임자가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례적으로 ‘면직’처분을 받아 그 배경을 놓고 각종 설이 난무했다. 청와대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한 ‘인사위원회’를 가동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 보단 ‘비선’을 통한 인사가 돌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위원회엔 이재만 총무비서관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