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경 제14회 광주비엔날레 감독

이번 전시 주제는 ‘무엇’이 아닌 ‘어떻게’

예술은 태도를 돌아보고 바꾸게하는 힘

30개국 80여 작가 출품...신작이 40%

광주정신에 공명하는 나라 아직도 많아

내년 봄 작품 보며 여행같은 관람하길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이숙경 제 14회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최옥수

유약어수(柔弱於水).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내년 봄 광주에서 열리는 제 14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다. 도덕경 78장에 나온다는 이 문구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물이지만 그 아무리 강한 것이라도 물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일종의 ‘태도’에 관한 설명이다. 태도란 현상에 대처하는 자세다. 일반적으로 특정 현상을 주제로 잡는 비엔날레와는 차이가 난다.

비엔날레의 주제가 대부분 현상인 이유는 비엔날레의 특성에서 연유한다. 동시대 예술을 통해 현시대를 조망하고 미래 방향을 제시하거나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감독이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주제로 제시하고 이를 담아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고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 그리고 가끔은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킴 림, 물 연작- 청동, 1979, 청동, 51 x 48 x 10 cm

예를 들면 제 13회 광주비엔날레 주제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으로 대안지성에 대해 탐구했고 12회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로 차별과 분단, 장벽에 대해 논의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를 주제로 20세기 초현실주의, 미래주의, 다다, 바우하우스의 개념과 동시대 예술을 교차시키며 인간의 ‘변형’에 대해 질문한다. 앞서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는 ‘흥미로운 시대에 사시기를(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를 주제로 우리시대 가장 어처구니없게 흥미로운,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상황들 즉 끝나지 않은 냉전, 약탈적 자본주의, 인종차별, 젠더이슈 등을 꼬집었다.

그런데 이번 광주의 주제는 어쩌다 태도가 된 것일까. 이번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은 영국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 이숙경(53)씨를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광주의 방향키를 한국인이 잡은 건 지난 2006년 김홍희 감독 이후 처음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유마 타루, 회전하는 일련의 삶-직물과 같은 혀들, 2021, 스테인리스 스틸, 금속 실, 구리선, 모시실, 면사, 모사, 레이온4장, 각 500 x 250 cmⓒ유마 타루

▶태도가 주제다. 전복이라고 해야하나, 흥미로운 접근이다.=맞다. 이번 주제는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다. 태도가 예술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무엇일까.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개인적으론 예술의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팬데믹 기간 예술은 가장 힘이 없었지만 또 가장 전환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가장 약하고 보이지 않지만 진정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태도를 되돌아보고 바꾸게 하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의 이슈는 계속 바뀐다. 그러나 예술은 어떤 이슈라고 할지라도 이를 담아내고 결국 변화를 끌어낸다. 이번 주제는 예술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작업 중인 리우 지엔화 ⓒ리우 지엔화 스튜디오

▶이번 비엔날레에는 30개국에서 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80여명은 적당한 규모라고 생각한다. 올해 카셀 도큐멘타처럼 1500명이라면 주제 집중도나 관리차원에서 힘들겠지만, 이정도는 컨트롤 가능한 스케일이다. 스토리가 있는 비엔날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일종의 여행같은 관람을 하길 바란다. 쉬어갈 수 있는 자리도 곳곳에 마련할 예정이다. 꼭 사색적 작품 앞에서만이 아니라, 강렬한 작품 앞에서도 충분히 작품을 느낄 수 있게 하고싶다.

비엔날레 전시관의 입구는 지금까지 늘 사용하던 곳이 아닌 로비로 활용하는 부분이 입구다. 광주 갈 때마다 전시관 입구를 빙 돌아가게 되어있어서 늘 의문이었다. 굳이 돌아가지 않고 바로 입장가능한 곳에서 시작해 전시장 하나 하나를 돌 때마다 다른 소주제를 만나고, 맨 마지막엔 무언가 ‘아!’하는 느낌을 받을수 있게 구성하고 있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비엔날레는 지양하고 싶다.

외부 전시장도 그 전시장이어야만 특징이 살아나는 작업을 배치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엔 자연광이 비춘다. 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비비안 수터의 작업이 이곳에 전시될 예정이다. 광주시립박물관에는 유물과 관련있는 작가를 매치했다. 캔디스 린은 옹기장인과 협업해 신작을 제작한다.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압둘라예 코나테, 빨강과 검정과 기표들, 2018, 직물, 310 x 370cm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의 비중은?=모든 작가들에게 꼭 ‘광주’에 방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일부 작가가 광주를 테마로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광주가 새로운 주제인 셈이다. 멕시코 출신 작가인 알리자 니센바움은 멕시코 이민자 초상으로 유명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광주 놀이패 ‘신명’의 얼굴을 담았다. 놀이패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갖는 의미와 역할에 대한 스터디를 바탕으로 10인의 초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일본작가인 고이즈미 메이로는 고려인 마을을 조명한다. 1910년대 만들어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극장을 소재로 일제시대 한국을 떠나 만주로 갔다가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했으나 결국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이주의 역사를 탐색한다.

신작이 전체 40%가 넘는다. 90%가 넘는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보여진다. 한국작가 비중은 약 17%다. 작가 지명도에 대한 우려도 있는 것을 아는데,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다(웃음). 주제 집중도를 높이고자 했고, 늘 보이는 비엔날레 단골 작가 말고 새로운 작업을 보고싶지 않나?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타이키 삭피싯, 스피릿 레벨, 202

▶여전히 ‘광주정신’은 유의미한가?=광주민주화항쟁은 여전히 유의미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안타까운 지점이지만, 광주정신에 공명하는 나라가 너무 많다. 미얀마, 홍콩 등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나라가 2020년대에도 존재한다. 러시아의 침공은 주권에 관한 이야기다. 광주항쟁은 국내용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나라의 작가들이 광주에 공명한다. 나의 역사를 가져와 광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정한 작가 중 대다수가 본인의 시각과 경험히 확실한 사람들이다. 생생한 삶의 경험이 작업으로 풀어진다. 나의 역할은 맥락을 제안하는 것일 뿐이다.

이숙경 감독은 홍익대에서 예술학과(학·석사)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시티대에서 석사, 에식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테이트 리버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기 시작해 2012년부터는 테이트모던에서 아시아태평양리서치센터 책임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미술은 柔弱於水〈유약어수: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다〉...시간이 지나야 안다, 버리는 건 없다”
크리스틴 선 킴, 모든 삶의 기표, 2022, 혼합 재료 설치가변 크기독일 하우스 데어 쿤스트 설치 전경 [광주비엔날레 제공]

▶2019년 테이트모던 백남준 회고전을 기획했고, 현재도 아시아태평양리서치센터 책임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기업에서 보면 R&D 연구소 같은곳이다. 어떤 담론을 형성해서 미래를 주도할 미술관으로 남을 것인가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리의 결론은 지역을 연계해야한다는 것이다. ‘트랜스내셔널’이라는 개념인데, 인터내셔널-글로벌 담론을 넘어서는 것이다. 평등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들어 미니멀리즘과 모노하가 비슷하다는 것을 넘어 이 둘이 어떻게 다르고 비슷한 배경에서 출발했나를 본다. 수평적인 것들의 교환, 연결성에 초점을 맞춘다. 지금 생각해보니 ‘태도’를 주제로 삼는 비엔날레도 이처럼 사고하는 것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싶다(하하).

▶한국에서 비엔날레가 시작된 것도 30년 가깝다.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에 시작했으니까.=비엔날레 제너레이션 작가들이 있다. 좋은 현대미술에 일찍부터 노출된 것이다. 영국 사운드 작가 하룬 머저가 백남준 상 수상소감으로 ‘대학 1학년때 뉴욕에 갔다가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백남준 작가의 랜덤 엑세스를 본 것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미술은 유약어수다. 당장은 모른다. 가랑비에 젖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버리는 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미술의 강점과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