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심화 편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기사 내 르네 마그리트와 평론가의 충돌 장면, 양측이 내놓은 각 작품에 대한 입장 등은 당시 상황을 참고한 가상 스토리임을 밝힙니다.)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참나, 뜻이 읽히는 게 그렇게 부끄럽소? 그냥 '선생님들,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하며 인정하면 될 일 아니오?"
한 살롱. 말쑥한 화가가 도끼눈을 뜬 비평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묘한 그림 두 장이 놓여있습니다. "제 그림의 뒷배경을 연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글쎄요. 그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걸 이렇게까지 '오버'해서 해석하신다니 황당하고 당황스럽네요." 검은 중절모와 회색 정장 차림새의 화가가 받아칩니다.
"이봐, 우린 다 안다고. 자네가 잊지 못한 유년기의 '그 일'이 그림 속에 그대로 묻어있다는 걸 말이야!"
비평가들이 외칩니다. "저도 알 수 없는 제 그림의 뜻을 안다니, 저보다 운이 좋으시군요." 화가는 또 고개를 젓습니다. 물러서지 않는 이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1898~1967)였습니다. 양측은 어떤 그림들을 놓고 입씨름을 했을까요. 누가 억지를 쓰고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 편에 더 가까이 설 수 있을지 보겠습니다.
얼굴에 두건은 왜 썼어요?
검은 정장과 검은 넥타이, 흰 와이셔츠 차림의 남성, 어깨가 훤히 보이는 붉은 계통의 민소매 옷을 입은 여성입니다.
시간과 공간 모두 점치기가 힘듭니다. 어슴푸레한 새벽인지, 막 땅거미가 내린 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식 건물 아래인지,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 밑인지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요.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림 이름이 '연인(2)'인데요. 가장 눈길을 오래 끄는 건 단 하나, 흰색 천입니다. 얼핏 보면 어떤 종교 의상 같습니다. 우연히 내려앉은 헐렁한 커튼 천 같기도 합니다. 별로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기괴함과 섬뜩함이 함께 느껴집니다. 이런 일을 하는 연인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 입 맞추는 연인에게 굳이 흰색 천을 씌웠습니까. 도대체, 무슨 뜻이 있습니까. 평론가들은 궁금해합니다.
사과는 왜 거기 있어요?
이번에는 한 남성이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검은 중절모, 엉덩이 밑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 흰색 와이셔츠와 빨간색 넥타이가 눈길을 끕니다. 특별할 게 없는 복장입니다. 다만 배경은 모호합니다. 먹구름은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걷히고 있는 걸까요. 벽돌은 견고할까요, 허술할까요. 파란색 사막 같은 바다는 유해 보이기도, 폭풍전야의 야성을 품고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작품 제목은 '사람의 아들(Son of Man)'입니다.
이 작품 또한 범상치 않지요. 사과나무에서 막 따온 듯한, 줄기와 잎사귀가 그대로 붙어있는 사과가 남성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옅은 웃음, 못마땅한 삐죽임, 아무 생각 없는 멍함 등 어떤 표정이 숨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두 팔을 볼까요. 왼팔이 오른팔보다 확실히 부자연스럽습니다. 왜, 굳이 사과로 사람 얼굴을 가렸습니까. 도대체, 불완전한 왼팔이 뜻하는 건 무엇입니까. 평론가들은 또 궁금해합니다. 속 시원히 대답하지 않는 마그리트 대신 나름의 해석을 늘어놓습니다.
당시 다수 평론가의 해석 : ①연인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마그리트의 어머니입니다.
설명하기에 앞서, 마그리트가 품고 있는 아픈 기억을 말해야 합니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정장 재단사, 어머니는 모자 상인이었습니다. 마그리트는 장남이었지요. 장남에게 끈질기게 따라오는 게 무엇인지 아실까요? 바로 책임감입니다.
1912년 3월. 마그리트는 당시 14살이었지요.
마그리트는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왜냐고요. 강물에 몸을 던진 어머니가 숨이 멎은 채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 떠도는 이야기를 정리해보면(마그리트 본인은 어릴 적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으니까요!) 마그리트는 현장에서 그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물 위로 떠오른 어머니가 입고 있던 게 흰 레이스 잠옷이었대요. 그 옷이 어머니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그리트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이 자체가 트라우마로 남았겠지요. 남다른 책임감을 가진 마그리트는 이 그림으로 속죄하고 있습니다. 평소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를 더 챙기지 못한 죄, 그런 어머니를 차츰 잊어가고 있는 죄 말입니다. 어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만이 기억할 수 있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꾹꾹 눌러 담은 겁니다.
그렇다면 남성은요?
마그리트 자신이겠지요. 잘 보시죠. 그렇게 육감적인 분위기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가까운 연인 같지만, 두 사람이 덮어쓴 흰색 천을 걷어내면 둘은 분명 울고 있을 겁니다. 눈도 퉁퉁 붓고, 양 볼도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새빨갛게 젖어있을 겁니다.
당시 평론가의 해석 : ②사람의 아들
중절모와 정장.
마그리트가 자주 하는 복장이지요? 누가 봐도 마그리트의 자화상이라는 뜻입니다. 제목을 보면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하면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人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예수입니다. 예수는 자신을 '인자'로 칭했습니다.
마그리트는 자신을 예수에 투영했습니다.
결국 고난을 겪고, 배신도 당하고, 죽음을 마주한다는 점만 떼어놓고 보면 예수의 삶과 자기 생이 다를 게 없다고 여긴 겁니다. 사과는 그가 마주하는 갖은 유혹(선악과를 표현한 것이겠지요?), 뭉툭한 왼팔은 불안감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거장 반열에 발이 닿은 자신 또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을 고백한 겁니다.
사과로 얼굴을 통째로 가린 이유는요.
아직 완전한 나 자신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장남 역할을 한 첫 번째 자신,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 뒤 달라질 수밖에 없던 두 번째 자신…. 시간이 상처는 보듬어주지만, 흉터까지 안고 가지는 못합니다. 마그리트는 아직 두 종류의 나를 놓고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이며, 어느 것이 스스로에게도 무해할 수 있을 지를 결정하지 못한 탓입니다.
마그리트의 주장 “글쎄요…”
제 그림에 온갖 뜻을 담아주시니 무척 감사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모든 풀이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 뜻이 모두 드러난 게 부끄러워서 그런 게 결코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그림들을 그린 까닭은 오직 재미입니다. 정말로, 단지 재미있어서 이렇게 그린 겁니다.
제 삶에 그런 트라우마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저는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가령 눈만 감으면 알록달록한 상자들이 두둥실 떠다니는 꿈을 꿀 때가 있었습니다. 집 지붕으로 난생처음 보는 열기구가 떨어진 적(외계인이 나오는 게 아닐까 설렜지요!)도 있었습니다. 공동묘지를 배회하는 화가와 진솔한 이야기도 나눠봤습니다. 제 방 침대는 저만의 우주선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저는 이불 속에서 에드거 앨런 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스릴 넘치는 책을 읽었습니다.
손재주가 있는 부모님 덕인지,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데 재주가 있었지요.
1916년. 저는 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났지만, 아버지는 제가 품은 재능을 진심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런데요. 옛 화풍을 정답으로 보는 그림 공부는 별로였습니다.
큰 흥미를 못 느끼고 벽지·포스터 디자이너로 돈을 벌던 젊은 시절,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를 본 겁니다. 감전된 양 짜릿했습니다. 저는 흥분했습니다. 필시 관련 없을 석조 두상과 수술 장갑, 녹색 공이 왜 모였을까. 생뚱맞은 이 그림이 이토록 근엄하게 느껴지는 건 무엇 때문일까…. 아무나 붙잡고 밤새 토론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재미로 그린 것이라면? 애초에 무슨 뜻도 없는 게 아닐까.
어느 날 밤, 이 생각을 한 뒤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습니다. 그림에 꼭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릴 때 재밌고, 봤을 때 즐겁기만 해도 예술인 겁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달아버린 겁니다.
재미와 즐거움, 그것만이 전부라오
재봉틀과 박쥐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이 말은 '추방하는 것'으로 풀어쓸 수 있는데, 저는 단지 이 방식을 즐겨 썼을 뿐입니다. 이는 사물을 일상에서 '추방'해 이상한 곳에 배치하는 기법입니다. 낯익은 물체를 예상치 못한 장소에 둬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방법입니다. 사하라 사막에 외계인이 탄 무지갯빛 열기구 수백개가 떠다니고, 공동묘지 한가운데에서 랭보와 앨런 포가 체스를 둔다고 상상해보세요. 재미있지요. 저는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겁니다.
많은 비평가가 제 그림을 보고 심오하다고 합니다.
그런 해석은 제가 192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잠깐 어울린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브르통 같은 사람의 그림을 놓고서 하시면 됩니다. 제 그림이 철학적이라는 말은 인정합니다. 웃음은 원래 철학적인 법입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이들에게 재미를 안겨주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늘 하는 말을 전합니다.
"누군가는 제 그림을 보면 또 '이게 무슨 의미야?'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제 그림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뜻을 아세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후암동 미술관 읽는 순서(연재 중)〉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7)“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8)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9)“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0)‘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1)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2)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3)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빈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4)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5)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심화편 (2022. 9. 3)
16)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17)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18)“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19)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대모 (2022. 8. 20.)
20)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