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정국에 가려있다가 가까스로 추진동력을 마련했다 싶던 공무원연금 개혁이 이번엔 예산안 정국에 가로막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내 처리 주문에 이어 새누리당 지도부가 발벗고 나섰지만 야당과 공무원 사회의 반발로 한발짝 내딛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정부와 여당은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없는 올해가 연금 개혁의 적기라고 외쳤지만 반발이 거세고, 진척이 더디자 올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개혁자체가 아예 물건너간 것 아니냐는 자조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이후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표계산이 먼저인 정치권이 연금개혁을 지속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 때문이다.
우선 내년 2월 8일에 있을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가 첫 번째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새 지도부를 구성하게 될 새정치연합의 2ㆍ8전대는 2016년 4월 총선은 물론 야권의 대권구도까지 가르게 될 분수령이다. 벌써부터 친노-비노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야권이 전대를 앞두고 당내 정치에 올인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렇게 되면 야당 지도부가 경선관리 모드로 전환돼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에 쏟을 여력이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어지는 새누리당의 차기 원내대표 경선도 연금개혁과의 안녕을 고하게 할 것이란 지적이다. 공식적으로는 내년 5월이 현 이완구 원내대표의 임기만료 기한이지만 내년초 개각 결과에 따라 경선스케줄이 앞당겨 질 수도 있다. 야당과의 각종 협상을 주도하는 원내대표와 수석부대표,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가 한꺼번에 바뀌게 되면 지금껏 이뤄진 협상테이블이 다시 차려지게 될 공산이 크다. 거기다 차기에 거론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중량급 인사들이면서, 계파구도까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 경쟁 또한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내년 상반기 양당은 모두 총선에 대비한 전열구축을 마무리 짓게 되고, 정치권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총선 레이스에 들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여야간 경쟁은 물론이거니와 각 당내에서도 내부갈등이 표면화할 수 있어 연금개혁안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다른 시각도 있다. 국민들의 지지가 탄탄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를 마냥 외면하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올해 내 처리라는 여당의 목표가 달성되긴 힘들겠지만, 아예 무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배 본부장은 “예산안이 해결되고 나면 여론의 관심이 공무원연금에 쏠릴 것”이라며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총선모드로 접어들기 전인 설 이전, 혹은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이 있기 전에 처리될 것으로 점쳐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 역시, 총선을 앞둔 여론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통한 당 지지율 상승의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처리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