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 AI+x 인재 양성 현장 가보니
산업연구원, 기업의 53% “인력부족으로 AI 도입 포기”
폴리텍 ‘러닝팩토리’ 전국 36개 캠퍼스에 59개로 확대 운영
조재희 이사장, 모든 교육훈련과정에 AI+x 교과 100% 편성 운영 지시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지난 1985년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명작 영화 ‘백투더퓨처’에 등장하는 발명가 에미트 브라운 박사의 집엔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 정해진 시간에 TV가 자동으로 켜지고, TV소리에 닭이 달걀을 낳으면 그 달걀이 데굴데굴 굴러가 깨진 후 달궈진 후라이팬이 떨어진다. 아쉬움을 자아내는 장면도 있다. 다름 아닌 반려동물 사료배급 시스템이다. 이 장치는 반려동물 먹이가 든 캔이 자동으로 오픈돼 그의 반려견 아인슈타인의 밥그릇에 배급하도록 돼 있는데, 그 밥그릇이 가득차 있어도 캔속의 사료는 추가 공급돼 넘쳐흐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27일 방문한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에서 ‘인공지능(AI)+x’ 실습현장을 보면서 ‘만약 광주캠퍼스 학생 중 한 명이 브라운 박사를 만났다면, 박사는 넘치지 않는 사료배급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캔 뚜껑을 자동으로 따서 밥그릇에 옮겨담는 것은 기존 ‘뿌리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저메키스 감독의 상상력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밥그릇에 남은 사료가 얼마인지, 상하진 않았는지 확인한 후 재공급하는 것은 AI의 영역이다. 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에선 바로 이렇게 기계, 금형, 산업설비 등 뿌리 기술에 AI를 덧입힌 신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러닝팩토리’라고 부르는 본관 1층 창의융합기술센터에선 서로 다른 기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제품의 설계·디자인·가공·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공정을 한 공간에서 체험하고 실습하고 있었다. 강구홍 광주캠퍼스 학장은 “한 가지를 배워 취업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광주캠퍼스는 제조업 전반에 활용되는 금형, 용접, 표면처리 등 뿌리기술에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기술을 융합한 ‘현장형 통합 실습 교육환경’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은 ‘러닝팩토리’를 2018년 인천캠퍼스에 시범 도입해 올해 기준 전국 36개 캠퍼스에 59개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AI+x 인재양성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폴리텍의 이런 교육 시스템은 지난해 3월 조재희 이사장 취임 이후 본격화됐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내놓은 분석을 보면 기업의 53%이상이 인력부족으로 AI 도입을 포기했다. 조 이사장은 올해부턴 폴리텍의 모든 교육훈련과정에 AI+x 교과 100% 편성 운영을 지시했다. 이는 주효하게 먹혔다. 실제 지난해 신설된 AI융합과가 1개 수료생은 취업률 94.4%를 기록, ‘AI+x 인재 양성 계획’의 당위성을 입증했다. 이에 폴리텍은 오는 2024년까지 매년 AI+x 학과 5개 신설, 소프트웨어(SW) 학과 5개 개편할 계획이다.
이렇게 길러진 인재들은 이미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명진(30)씨는 대학에서 전공한 미디어콘텐츠디자인에 AI기술을 융합해 AI 영상분석 기술을 적용한 교통관리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에서 생명환경 분야를 전공한 한영석(30)씨는 AIoT 시스템을 활용한 스마트팜 구축 현장에 근무하고 있다. 예컨대 축적한 데이트를 통해 작물의 정확한 수확시기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씨는 “몇 년 사이 인공지능 기술이 급부상했다”며 “하이테크 과정은 기존 전공도 살리면서 새로운 기술 분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광주캠퍼스와의 산학협력 인재양성 모범사례로 꼽히는 화천기공에는 유독 폴리텍대학 출신이 많다. 화천기공은 두산공작기계, 현대위아와 함께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공작기계 업체다. 정년이 60세까지인 탓에 일찍 폴리텍대학 교수에서 은퇴한 안상수 화천기공 기술고문은 “학교 러닝팩토리에서 화천기공 제품을 이미 경험한 신입사원들은 적응이 빠르다”고 말했다. 화천기공 신입사원 초임은 성과급을 제외하고도 4500만원 수준이다.
조재희 이사장은 “1980년대 고도성장기 제조업 중심 산업인력 양성을 선도한 한국폴리텍대학은 2010년대 초 저성장기 실업자 훈련을 중심으로 사회안전망을 수행해왔다”며 “향후 10년 디지털·저탄소 경제 전환을 ‘제2 고도성장기’의 기회로 삼기 위해 반도체, 인공지능(AI), 배터리, 로봇 등 핵심 산업 인재 양성에 민관산학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