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조용직 기자]세계 격투기 무대에서 활약한 최초의 한국인 파이터는 손형민(44ㆍ미국명 조 선)이다. 그는 UFC와 프라이드FC, K-1 3대 메이저 격투기단체를 두루 거친 선구자였다. 한국계 혼혈 ‘슈퍼코리안’ 데니스 강(37ㆍ캐나다)이 2009년 UFC에 진출하며 이룬 3대 단체 출전을 7년 빠른 2002년 완성했다.
그는 특이한 캐릭터와 외모로 영화 ‘오스틴파워’와 ‘여호수아 트리’에도 출연할 만큼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가만히 제자리에 있었으면 레전드 대접을 받았을 터다. 하지만 그는 현재 미국 샐리나스 감옥에 수감돼 있다. 그는 어떤 인물이며 무슨 일로 영어의 몸이 된 걸까. 그의 기구한 인생을 돌아보자.
그는 1970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하지만 국적은 한국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63㎝의 단신이었음에도 107㎏ 전후로 체중을 유지하며 헤비급 파이터로 활동했다. 첫 공식경기는 꼭 20년 전인 1994년 12월 UFC 4회 대회였다. 이 경기에서 그는 비록 패했지만 경기에서 엄청난 인내력과 코믹한 스타일을 동시에 뽐내며 일약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당시는 ‘무규칙 격투기’를 지향했던 UFC는 금적 공격이 반칙이 아니었다. 상대였던 키스 해크니가 손형민을 캔버스에 눕힌 채 사이드포지션을 차지, 십여발의 펀치를 급소를 향해 날렸다. 이 공격 대부분은 급소에 정확히 꽂혔다. 하지만 그는 이런 끔찍한 공격을 받고도 항복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분44초 만에 항복의사를 표시하면서 패하긴 했지만, 이는 해크니가 금적 공격으로 여의치 않자 그의 트렁크를 벗기려 하자 마지못해 항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경기를 통해 그는 ‘금강불괴’ 또는 좀더 적나라하게 ‘강철XX’로 위명을 떨친다. 이듬해인 1995년 열린 K-1의 서브브랜드 대회 K-3에서는 극진공수도의 카쿠다 노부아키와 초반 난타전을 펼치며 실력적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선수로 호평받는다. 2002년에는 드디어 프라이드FC의 하부 대회인 ‘프라이드 더 베스트’에도 출전한다. 하지만 그의 격투기 전적은 결국 5전 전패로 마무리된다. 네 차례 종합격투기 경기와 한 차례 입식격투기 경기에서 한 번도 승을 건지지 못 했다.
그렇게 일반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손형민은 지난 해 매우 불미스런 일로 세간에 재등장한다. 현지에서 무려 17건의 성폭행 혐의로 법정에 선 것이다.
그는 지난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캘리포니아주 헌팅턴 비치에서 라틴계 남성과 함께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는 그가 2008년 다른 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DNA 검사를 받으면서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그는 이와 함께 살인 및 고문 혐의로도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코믹하고 강건한 파이터가 흉악한 범죄자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그는 2011년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한다. 성추행 죄목으로 형을 살던 그의 동료 수형자를 형무소 안에서 살해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죽기 전에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비록 실력은 어설펐지만 무지막지한 급소 공격을 참아내던 뚝심의 한국인 파이터는 실은 추악한 살인자이자 성범죄자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