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국제적 왕따’가 된 러시아의 ‘에너지 반격’을 막아낼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방의 가혹한 제재로 코너에 몰린 러시아가 유럽행 천연가스 수출 중단카드로 보복할 공산이 커져서다. EU는 연간 천연가스 수요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회원국간 ‘가스 품앗이’,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식 역내 장관 위원회 구성, 전용 기금 마련안까지 부상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벨기에 싱크탱크 브루겔에 따르면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차단해도 EU는 집단적 대처를 통해 심각한 부족현상을 겪지 않고 올해 가을까진 버틸 수 있는 걸로 파악됐다.
이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산업용 가스 감축 등 수요 측면 대응 ▷미국의 전략비축유와 유사한 일부 회원국의 전략 가스 매장량 활용 등의 대책을 쓴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런 단기 대응 과정에선 유럽 내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고(高)인플레이션을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EU 회원국별로 천차만별인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때문에 대러 제재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브루겔 자료를 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지 않는다.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는 천연가스의 10% 미만을 러시아에서 가져 온다. 반면 독일은 54%, 이탈리아는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33%를 러시아에 기대고 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의 러시아 의존 비율은 60%, 폴란드는 80% 가량이다. 불가리아의 의존도는 100%다.
러시아로선 에너지를 무기로 EU를 분열시키고 좌우할 전략을 쓸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때문에 대러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EU가 수 년 동안 제재를 유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하도록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브루겔은 우선 단기적으로 EU가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걸 줄이기 위해 가스를 많이 보유한 역내 국가가 독일·오스트리아 등 가스 부족 국가와 가스를 공유하는 이른바 ‘품앗이’ 안을 거론했다.
EU 안팎에선 이와 함께 각국 정부가 가스회사에 의무화 조치·금융지원을 통해 가스 비축량을 늘리도록 하고, 장기적으론 재생에너지와 단열기술에 대한 투자에 속도를 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걸로 전해졌다.
브루겔은 “상호지원만이 위기를 헤쳐나갈 유일한 방법”이라며 “잠재적인 에너지 부족에 대해 즉각적인 결정을 내리는, 미 NSC와 유사한 역내 장관 정기 위원회가 한 가지 선택지”라고 설명했다.
이 싱크탱크는 아울러 대러 제재를 시행해 재정적 손실을 입는 특정 국가·지역·부문을 위한 전용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U 세계화조정기금 또는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EU공정전환기금(JTF)을 모델로 한 기금을 신속히 설정할 수 있다며 연간 200억유로로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EU 회원국 에너지부 장관들은 지난달 28일 역내 에너지 상황 점검 회의를 했고,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