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처형장·천주교 성지·쓰레기 처리장...

비극의 역사 품고 새롭게 태어난 공간

지상 공원·지하 박물관으로 재탄생

붉은 벽돌 100만장...인간의 공력 담아

사람에 대한 존중 공간 격자 모듈 설계

아치형 디자인 그것 자체로 전시의 역할

역사적 공간 되살리기 위해 절제미 강조

붉은 벽돌+격자 모듈...갇혀있던 ‘땅의 기억’ 세상 밖으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모습.
붉은 벽돌+격자 모듈...갇혀있던 ‘땅의 기억’ 세상 밖으로
상설전시실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정체성을 담은 공간이다.
붉은 벽돌+격자 모듈...갇혀있던 ‘땅의 기억’ 세상 밖으로
지하1층의 공간은 로비이자 전시공간으로의 역할을 한다.
붉은 벽돌+격자 모듈...갇혀있던 ‘땅의 기억’ 세상 밖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상공원의 벤치에 자리한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
붉은 벽돌+격자 모듈...갇혀있던 ‘땅의 기억’ 세상 밖으로
전망대 공간.[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제공]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 한양의 4개 소문(小門) 중 서소문이 자리한 중구 칠패로는 일찌감치 난전이 형성돼 사람들로 북적였다. 칠패 시장 주위로 ‘한강의 지천’인 만초천이 흘렀고, 그 옆으론 새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이곳은 조선의 ‘공식 처형장’이었다. 시장과 천이 만나는 곳엔 백성이 모이니 ‘처형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수월했고, 시신을 내보내는 ‘시구문’ 역할을 하는 문도 자리했기 때문이다. 19세기로 접어들며 시작된 3대 박해(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 이후엔 처형된 천주교인 44명이 성인으로 추앙된 천주교 순교지로 기억됐으나,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땅의 역사는 잊혀졌다. 1973년 근린공원으로 조성됐다가, 경의선 철로와 서소문 고가로 접근로가 막히고 재활용쓰레기 처리장이 들어서며 사람들의 발길은 멀어졌다. 이곳을 찾는 이는 황량한 서울역에서 걸어들어온 노숙자뿐이었다.

갇혀있던 ‘땅의 기억’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6400평의 대지 위로 붉게 솟은 큐브 아래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다. 이곳은 건축사무소 인터커드(윤승현 중앙대 교수), 보이드아키텍트(이규상 대표), 레스건축(우준승 소장)이 함께 설계, 2014년 6월 공모에 당선됐다. 완공까지는 무려 5년이 걸렸다.

공간은 장소의 의미를 고스란히 품었다. 최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윤승현 교수는 “땅 위에서 생긴 사건들이 땅 밑으로 스며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며 “땅 위와 아래의 관계를 공간적 체계를 통해 메시지를 담는 형식으로 구상했다”고 말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구조가 이를 반영했다. 지상은 공원, 지하는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과거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박물관은 지상 1층·지하 4층, 연면적 4만6000여㎡ 규모에 달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설계의 방향은 두 가지였다. “장소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머금은 역사공원”이자 “한 종교의 성지로서가 아닌 역사 안에서의 종교로 스며들되 공공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종교적 색채를 완전히 지우진 않았다. “천주교를 빼고는 이 공간을 설명할 수 없고, 그것을 지우는 순간 무색무취의 문화공간, 장소와 이격된 즐겁지 않은 공간”(윤승현 교수)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지상의 역사공원에서 출발한다. ‘죽음의 역사’를 간직한 비극의 땅 위에서 시작하는 걸음은 긴 시간을 축적한 땅 아래로 이어진다.

박물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붉은 벽돌’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무려 100만 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렸다. 윤 교수는 “땅 밑을 다루는데 있어 켜켜이 아래로 내려가는 일련의 과정을 벽돌을 통해 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정체성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소가 가진 역사와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쉽게 완성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공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건축가들의 마음이다.

벽돌뿐만 아니라 박물관 재료로 사용된 콘크리트, 철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규상 대표는 “노출 콘크리트 역시 거푸집에서 한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쪼아서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공력을 담아야 하는 재료”들은 오랜 세월 존재해야 하는 건축물에 “세월의 녹을 서서히 받아주는 운치를 만든다”는 장점도 있다.

이 대표는 “박물관의 공간은 하나하나가 특색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체 틀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선에서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기존 주차장 구조를 활용한 만큼 박물관은 이로 인한 건축적 특징도 나타난다. 격자모듈이 다층구조로 연결되며 여러 개의 독립 공간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기존에 있던 질서가 의미있게 정돈된 모듈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를 차용하자 새로운 공간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가로 7.5m, 세로 8m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격자모듈은 박물관의 공간의 기본 그리드(격자판)가 됐다. 윤 교수는 “한 단위의 모듈은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인간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하여 정한 공간 또는 척도)에 잘 맞는 공간이라고 봤다”며 “박물관이 관람객을 맞이할 땐 사람을 존중하는 공간의 스케일과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나의 모듈은 방 하나 하나의 구조와 같다. 과장될 만큼 웅장해 그 안의 사람이나 작품이 왜소해지는 전시공간과 달리 편안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한 것이다. 하나의 모듈이 여러 개 합쳐지면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정하상 경당, 콘솔레이션홀로 증폭한다. 윤 교수는 “하나의 모듈에서 시작한 공간은 동선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공간의 깊이감을 느끼게 했다”며 “가장 마지막에 만나는 하늘광장에선 한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공간으로 확장, 일련의 건축적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규칙적인 모듈 구조가 이어지는 공간 뒤에 만나는 상설전시실에선 기분 좋은 ‘의외성’을 마주하게 된다. 상설전시장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1전시실에선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제2전시실은 서소문 밖 네거리의 장소성에 집중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곳은 실내공간 중에선 가장 밝은 공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붉은 벽돌이나 검은 철제, 노출 콘크리트가 아닌 새하얀 아치형 디자인의 건축이 그것 자체로 전시의 역할을 한다. 윤 교수는 “일반적인 경우 전시공간은 건축이 만들어지면 전시와 건축이 충돌하는데 이곳에선 건축과 전시가 일관성있게 묶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천주교 성지’라는 역사적 의미의 무게는 상당하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관람객이라면 문턱을 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윤 교수 역시 “설계와 건축 과정에서 오랫동안 짓누른 것이 장소적, 역사적 가치였다”며 “이로 인해 절제의 미학이 가장 중요한 건축적 요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벽돌 100만장을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쌓을 것인가를 두고 끝없이 갈등했다”며 “쌓는 방식, 모양 등 다양한 디자인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 프로젝트의 무게감은 우리가 건축의 예술성에 치중하는 것이 옳은가에 질문을 던지게 했다, 공간이 가진 역사적 가치로 인해 끊임없이 절제해 공간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