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데이터 이용

안전장치 충분하지만

공익적 성과로 내놔야

[현장에서]의료계의 몽니, 보험사의 멍에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4년 만에 보험사들의 공공 의료데이터 활용이 재개됐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인정보를 악용해 보험 가입을 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험사들은 이에 대해 의료계의 기득권 지키기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서로 소비자 권리를 앞세우면서도 상대를 믿지 못하는 모습이다.

보험사가 공공 의료데이터를 획득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롭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의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에서 보험사의 연구가 윤리적·과학적으로 타당한지 여부 등을 심의받아야 한다. 생명윤리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심의면제 대상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IRB 심사가 끝나면 보험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공공 의료데이터를 신청해야 한다. 각 기관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 자체 심의위원회를 열고 보험사의 연구계획서를 심사한다. 이때 연구방법이 적정한지, 개인정보 보호 절차는 마련했는지 등도 살펴본다. 특히 사용 목적이 공공성에 부합하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이같은 사전 허가 절차가 끝난 후에야 보험사는 의료데이터를 제공받을 자격을 갖는다.

데이터를 제공받는 과정도 복잡하다. 심평원과 건보공단 내 지정된 장소, 특정 컴퓨터만 활용할 수 있다. 이때도 사전에 허가받은 연구자가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이 자리서 비식별화된 의료데이터를 분석한 후 그 결과값만 가져갈 수 있다. 의료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기간도 한 달로 한정돼 있다.

[현장에서]의료계의 몽니, 보험사의 멍에

한 번 허가를 받았다고 해서 공공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때마다 IRB 심사부터 새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만약 이번에 당뇨 치료 데이터를 받았더라도 다음 번에 뇌질환 데이터는 다시 신청해야 한다.

사후 관리·감독도 받는다. 이르면 내달 중 금융위원회는 ‘보험업권 빅데이터 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이다. 보험사들이 의료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했고, 실제 어떤 상품이 출시됐는지 검증한다. 개인정보를 재식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5년 이하 형벌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3중 안전장치만 잘 지켜진다면 의료데이터를 악용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의협은 국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의료데이터를 보험사에 넘겼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국회는 4년 간의 오랜 토론 끝에 데이터 3법을 통과시켰다. 이때 비식별 의료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의료계의 우려가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지나친 우려가 모두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 의료계 지적대로 그간 보험사들이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 지급 거부 등으로 국민들의 불신을 샀던 것도 사실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공공의 소유물인 의료데이터를 이용하는 만큼 보험사들은 보험료 인하, 보장항목 확대 등 공익적 성과를 내 의료계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만약 보험사들에 돈 벌이에만 급급해 소비자 불편과 보안 문제를 야기한다면 다시는 의료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을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