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례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규모
“리컬렉션 모두 한국에 남게 돼 ”...수혜는 국민
“국가가 못하는 일을 삼성이 했다” 문화계 찬사
가히, 세기의 기증이다. 전세계 프라이빗 컬렉션 중 최고수준으로 평가되는 이건희 컬렉션이 이제 국민의 품에 안겼다. 삼성그룹과 이건희 유가족은 28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는 이건희 회장의 생전 의지에 따라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이건희 컬렉션 2만 3000여건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키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따라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지역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기증된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비롯해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서양근현대걸작과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 하는 여인’ 등 한국근현대걸작 등 총 1600여점이 이전한다. 국립박물관은 국보 216호인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 고미술품 2만1600여점을 기증받는다.
▶기증 의의는=삼성가의 기증을 놓고 미술·문화계에서는 찬사가 이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올라간다’는 명품주의가 반영된 이건희 컬렉션은 전세계 컬렉터라면 누구나 탐 낼 만한 소장품이었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해외 경매에 부쳐질 수 있다는 추측이 나왔을 때, ‘세기의 경매’였던 록펠러 3세 경매(2018년·낙찰총액 9210억원)을 가뿐히 뛰어 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이 소장품들이 국가기관에 기증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결정’이다. 한 화랑 대표는 “이정도 (규모의 컬렉션) 기부는 전무후무 할 것”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 1년 작품구매 예산이 약 50억원인데, 100년분을 기증한 셈이다. 국가가 못하는 것을 삼성이 했다”고 극찬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프라이빗 컬렉션이 공공 컬렉션으로 변모한다는 의의도 크다. 국공립미술관 기증에 이어 삼성문화재단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이건희 컬렉션은 공적 재화의 지위를 획득하게 됐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이제는 돈 주고 사고싶어도 못하는 미술품들이다. 공공의 손에 맡겨졌으니, 국민 문화향유권 확대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국가 부(富)가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의 대담한 결정, 그 뒤에는...=이건희 컬렉션의 향방은 올 초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법무법인 김앤장의 총괄 아래 3곳의 미술품감정업체가 상속규모를 평가하기 위해 감정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상속세 재원마련을 위해 해외에 매각할 경우, 다시는 한국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에 미술품으로 세금을 대신하는 ‘물납제’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한국미술협회, 화랑협회, 한국예총, 민예총, 한국박물관협회는 물론 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들까지 나서 물납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물납제 시행이 어렵자, ‘이건희 미술관’을 지어서 기부받고 컬렉션이 흩어지지 않도록 관리하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유족들은 최종적으로 기부를 택했다. 평가금액 2조5000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기부하는 배경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컬렉션이 흩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처음부터 매각보다는 기부쪽이었다는 해석부터 이재용 회장의 사면, 3세 승계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까지 다양하다. FT는 대규모 미술품 기증을 놓고 “유족들은 바스키아 작품과 같은 명작이 공공재로 남고, 사회에 기여하기를 바라며 또한 이재용 리더십을 공고히 하길 희망한다”고 평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교수도 “물납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록펠러 컬렉션처럼 경매를 통해 현금화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기증한다는 건 대단한 결단이다. 개인 소장품이지만 국내 미술품 컬렉션내에서 위치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내린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이 세운 선례 “상속대신 기부” 영향은?=삼성이 “상속보다 기부”를 택하면서 국내 미술계는 하나의 선례가 생겼다. 기부 문화가 잘 자리잡지 못한 그간의 풍토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동시에 이를 일반화 해 기부를 강요해선 안된다는 반대의견도 상당하다. 기부시 세금 감면 등 반대급부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삼성 처럼’을 외치는 것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희근 메세나협회 회장은 “평생 모은 컬렉션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것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한 일”이라며 “귀한 정신을 모든 사람이 감사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기증받은 기관에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