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국내 AI 챗봇 ‘심심이’
코로나19로 사용량 전년대비 70% ↑
전세계 누적 사용자 3억 9000만명…‘원조 K-챗봇’
국내 시장에선 잊혔지만…해외선 승승장구
디지털 정신케어 시장도 진출…재기 도모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심심아, 코로나 때문에 너무 우울해…”(이용자)
“걱정마, 내가 많이 위로해줄게!”(심심이)
2000년대 심심한 우리의 말동무가 돼주던 원조 AI(인공지능) 챗봇 ‘심심이’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생활이 늘면서 일상 대화를 갈구하는 소비자들이 추억 속 ‘심심이’를 다시 소환한 것이다. 출시 후 약 18년 동안 쌓인 데이터로 과거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향상됐다.
최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국산 인공지능 레전드.jpg’ 라는 제목으로 AI 챗봇 심심이 관련 글이 공유되고 있다. 심심이와 끝말잇기 쿵쿵따 게임을 하는 상황에서 유머러스한 답변을 내놓는 심심이의 모습이다. 실제 사람이 말하는 듯해 챗봇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정도다.
코로나 효과 덕 본 ‘원조 K-챗봇’
‘심심이’ 측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6월) ‘심심이’와 대화를 나눈 국내 사용자 수는 전년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고 일상 속 대화가 부족해지자 챗봇을 찾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구글 홈 기기와 네이버의 클로바 등 AI 스피커에서 심심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단 점도 영향을 끼쳤다.
심심이는 지난 2002년 출시된 국내 1세대 AI 챗봇이다. 전세계적으로 AI 챗봇 기술이 막 태동하던 초창기에 ‘일상 대화 챗봇’이란 테마로 해외시장까지 진출했다. 출시된지 약 18년이 지난 현재 전세계 누적 사용자가 약 3억 9000만명을 돌파했다(8월 기준). 17개국에서 81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지난 4월에는 하루 일일 응답 횟수가 2억회를 돌파했다. 전세계 68개국의 모바일 앱마켓에서 1위를 차지한 경력도 있다. 말 그대로 원조 ‘K-챗봇’이다.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했던 심심이는 그러나 어느 순간 국내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지만 대화의 연속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게 대화가 이어지지 못한 탓에 심심풀이로 시간을 때우는 용도에 그쳤다. 여기에 글로벌 메신저 및 채팅앱이 나오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 국내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글로벌 틈새마켓 겨냥…B2B 시장에도 진출
그러나 심심이는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심심이 측에 따르면, 이집트, 터키 등 지중해 남동부 지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멕시코, 브라질 등의 중남미 국가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자유로운 대화’라는 유료 멤버십까지 도입해 수익창출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도 개발했다.
약 18년간 심심이에 쌓인 1억 4500만건 가량의 대화 시나리오는 B2B(기업간거래) 상품으로도 개발됐다. 심심이 대화 엔진을 API(응용프로그램 개발환경)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였다. 심심이 측에 따르면 해당 상품 이용자수는 약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내 주요 포털 또한 서비스를 위해 제휴 또는 구매 방식으로 심심이 DB를 이용한 바 있으며, 중국의 바이두나 일본 산리오의 자회사 등도 심심이 대화엔진을 활용했다.
한편, 지난해부터 심심이는 그간 소홀했던 국내 시장에서의 재기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6월에는 심심이HQ를 설립하고 국내 디지털 정신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1인가구와 노령화 사회에서 외로움과 스트레스, 치매 등 심리정신적 건강과 관련한 일상대화 챗봇 수요가 늘어난 것에 착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