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넘는 표현에 감정 골 깊어져
국제사회 신냉전시대 우려
글로벌 무대를 이끌어 나가던 미국과 중국이란 두 주연 배우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이젠 무대가 흔들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는 무법자로 변모해가고 있다. 두 나라간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신(新)냉전’시대가 오고 있다는 우려까지 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훌륭한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들이 매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5일 뉴욕포스트와 인터뷰에선 “코로나19는 그 지역(중국 우한)으로부터 나왔다. 중국은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해선 안됐다”고 비난했다. 불과 석달 만에 중국을 신뢰하는 파트너에서 코로나19 주범으로 낙인 찍어버렸다.
중국은 관영언론을 동원해 ‘책임론’을 제기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제정신이 아니다”며 강도 높은 비난으로 맞받아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중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표현하자 신화통신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에서의 코로나19 대유행을 지적하며 ‘트럼프 팬데믹’이라고 조롱했다. 미국 지도자를 직접 겨냥한 적대적 표현은 이전 중국 관영언론에선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일종의 선을 넘은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인민대의 시인홍 국제관계학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소 냉전과 달리 미·중 간 신냉전은 전면적인 경쟁과 급속한 분열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며 “미·중 관계는 더 이상 몇 년 전과 같지 않고, 심지어 불과 몇 달 전과도 똑같지 않다”고 말했다.
양국 국민들 사이의 감정의 골도 깊을대로 깊어졌다. 지난달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미국인의 대중국 인식을 조사한 결과 ‘부정적’이라는 비율이 66%에 달했다. 이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중국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특집기사에서 중국의 이전 세대는 미국을 본보기로 삼는 경향이 있었지만 올림픽과 고속철도, 모바일 결제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미국 정부는 할 수 없는 (방역 장비와 의료시설 지원 등을) 중국은 할 수 있다고 믿도록 길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양국 간 경제는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섣불리 휘두른 주먹이 자신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음에도 당장 눈앞의 위협 도구로 쓰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 국채를 둘러싼 논쟁이다. 중국은 미국 국채를 1조달러 이상 보유해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 다음으로 많이 갖고 있다. 미국 공공부채로 범위를 넓히면 중국이 1위 보유국이다.
중국에선 미국 국채를 매각해 미국 금융시장을 뒤흔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중국이 보유한 부채를 무효화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폴리티코는 “중국이 보유한 국채를 무효화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용을 파괴하고 미국 금리를 치솟게 할 것이며 세계적인 금융 대재앙을 촉발할 것”이라며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이 극히 낮고 그래서도 안되는 극단적 조치가 나도는 것 자체가 최근 양국간 분위기를 방증하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이를 주장하는 누군가에겐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두 강대국의 갈등이 인류 공통의 위기인 코로나19 사태 타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12차 5개년 계획(2011~2015년)에 처음으로 바이오산업 발전 계획을 포함한 이후 줄곧 바이오산업에 집중 투자해왔다.
지난해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참가규모 면에서 일본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다국적 바이오 시장을 미국과 중국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두 바이오 강대국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갈등을 택하고 있다.
베이징 주재 유럽연합(EU) 대사인 니콜라스 샤퓌는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 간) 정치, 경제적 긴장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이런 긴장은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협력 정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