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

中전시 흥행에도 귀국전은 초라한 성적

생애 총망라 했다지만 대표작 출품 안돼

설명 틀리고 부족…전시 완성도 떨어져

알맹이 빠진 ‘추사전’…무너진 ‘서예 자존심’
도덕신선, 김정희, 19세기, 32.2X117.4cm. 개인소장
알맹이 빠진 ‘추사전’…무너진 ‘서예 자존심’
알맹이 빠진 ‘추사전’…무너진 ‘서예 자존심’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전 첫 섹션인 ‘연행과 학예일치1’ 월 텍스트. ‘임군거효렴경명’(위)중 고천 효렴(高遷 孝廉)을 따다 썼는데, ‘고(高)’가 ‘이(二)’로 바뀌었다. [헤럴드DB·예술의전당 제공]

‘한국 서예의 자존심’ 추사 김정희의 작품세계를 돌아보는 전시가 지난 1월 18일부터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전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중국 국가미술관에서 한·중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선보였던 전시의 귀국전이다.

이 전시는 중국에서 일평균 5000명, 총 30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도 전시 흥행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정작 반응은 미지근하다 못해 썰렁하다. 예술의전당 측은 관람 시작 이후지난 25일까지 5041명이 관람했다고 밝혔다. 서예에 대한 관심이 중국만 못하고, 더이상 한자를 생활언어로 쓰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적은 수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전시엔 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작품을 비롯해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작가의 작품까지 총 120여 점이 나왔다. ‘추사’를 내건 전시 치고 상당한 규모다. 박물관은 이번 추사전의 의미에 대해 “추사는 150년전에 글로 현대를 내다 보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현대미술은 서구와 직통된다. 우리의 현대를 이야기하면서 서구미술용어를 차용해서 쓰고 있다”며 “한국현대미술의 정체성과 세계성의 종자가 추사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원류를 추사에서 찾겠다는 원대한 포부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전시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사의 전 생애를 망라했지만 정작 대표작은 출품되지 않아 그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다. 또한 추사와 한국현대미술을 연결고리로 김종영, 윤형근 등을 제시했는데 충분한 설명이 없어 ‘무리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예가 하석 박원규는 “추사는 당대 동북아 최고의 석학으로 그 학문적 깊이를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쉽지 않다. 옛 고전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썼다. 형태는 파괴적일지 모르나, 왜 그같은 형태에 이르게 됐는지를 살펴보면 가장 정통파 서예가임을 알 수 있다”며 ‘기괴고졸(奇怪古拙)’에만 초점을 맞출 순 없다고 했다. 미술사가 황정수는 “훌륭한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면모를 보기엔 여러가지로 부족한 전시”라며 “중국에서 먼저 전시하는 등 대대적으로 판을 키웠지만, 대팽두부(大烹豆腐·간송미술관 소장)와 같은 시각적으로 훌륭하다고 꼽히는 대작들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추사의 작업은 의미의 층이 여러겹이다. 상황과 맥락을 알지 못하면 그의 진가를 파악하기 어렵다. 서예는 의미와 형상의 조합인데, 현대 관객들은 ‘한자’ 텍스트 이해도가 떨어지기에 조형만 감상하게 된다. 최근 서예전에 설명이 많아지고, 더 친절해지는 이유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작품만 있으면 관람객이 다가가기 어렵다. 예를 들면, 19세기에 쓴 ‘도덕신선(道德神僊)’은 침계 윤정현이 판서에 오르자 추사가 이를 축하해주기 위해 쓴 글이다. 침계와 추사의 관계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해설은 전시장 내에선 찾을 수 없다.

기초적인 실수도 눈에 띈다. 전시장 벽 곳곳엔 전시의 섹션을 구분하기 위해 추사 글씨를 스캔해 붙여 놓았는데, 첫 섹션인 ‘연행과 학예일치’에 ‘이 효렴(二 孝廉)’이 프린트 됐다. 19세기에 쓴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중 일부인 ‘고천 효렴(高遷 孝廉)’을 따다 썼는데, ‘고(高)’가 ‘이(二)’로 바뀌었다. 박물관측은 “본래 고천(高遷)까지 다 보여 주고자 하였으나 해당벽면이 작품과 텍스트로 너무 꽉 차서 여백을 남기기 위해 ‘이(二)’까지만 디자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글자를 해체한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가진 않는다.

작품 해석이 불충분하거나 틀린 부분도 있다. 칠불설게 도득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등 선시문집에 적힌 ‘비묵족지오십년(比墨足支五十年·이 글씨 오십년을 전하고 남으리라)’은 ‘오천년’으로 해석돼 있다. 박물관측은 “작품을 탈초·해제 한 김규선 교수의 견해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문맥상 ‘오십년’은 말이 안 되고, ‘오천년’이 맞다”고 했다. 이 해석대로 라면 추사가 오타를 낸 셈이 된다. 학문하는 태도에 대해 쓴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은 ‘고고증금(攷古證今·옛 것을 상고하여)’으로 시작하는데, 작품 설명엔 ‘潢攷古證今(황고고증금)’으로 표기돼 있다.

이번 추사전은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개최한다. 3월 15일 서울 전시가 끝나면 예산과 과천, 제주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