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노조 지부장에 ‘실리 노선’ 이상수 후보 당선
- 글로벌 완성차 업계 몸집 줄이기 속 ’고용 안정‘ 무게
- 4년 만의 강성 노선 탈피…임금협상 등 갈등 최소화
- 고비용 저생산 구조 변화 예고…미래차 전략 힘 실려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실리·중도 성향의 이상수(54) 후보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차기 지부장으로 당선된 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위기감에서 비롯된 결과로 풀이된다. 치열한 미래 친환경차 경쟁 속에서 대두된 고용 불안이 조합원들에게 ‘안정’을 택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내부에서도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지난 28일 진행된 1차 투표에서 이 후보가 다득표를 기록했지만, 아산·전주 등 울산을 제외한 공장과 남양연구소 등 비생산직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1차에서 탈락한 나머지 두 후보가 강성 노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선 투표에서 강성 노조를 원하는 조합원들이 문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결국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핵심으로 꼽히는 울산 1~5공장 조합원들이 안정과 변화를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후보가 결선에서 승리하면서 현대차 노조는 4년 만에 강성 노선을 탈피하게 됐다. 실리·중도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 건 2013년 이경훈 지부장 이후 처음이다.
과거와 달라진 시장 상황이 변화를 촉진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현대차의 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2013년 8조3155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조4222억원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이 87조3076억원에서 97조2516억원으로 소폭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 비용의 증가와 인건비 상승이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내년 이후 본격화하는 전동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내연기관 침체에 따른 저성장 국면을 극복하기 위한 노사 간 협력이 향후 성장의 필수요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향후 진행되는 임금 및 단체협상의 노사 간 기류 변화도 예상된다. 노조원 1인당 연봉이 수당과 상여금을 포함해 평균 9000만원이 넘는 현실에서 인건비 절감이라는 글로벌 완성치 시장의 흐름을 따라갈지가 관전 포인트다.
현 노조위원장인 하부영 위원장의 발언이 표심에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 위원장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전략 토론회’에서 “임금 인상 투쟁의 방향이 옳은지 생각해야 한다”며 “노조가 기득권 세력이 돼 부자가 되기 위한 운동”이라며 강성 노선의 노동운동을 비판했다.
미래차 경쟁 속에서 불가피한 고용 불안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앞서 현대차 노사고용안정위원회가 오는 2025년까지 필요 인력이 4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인력 절감 노력은 진행형이다. 폴크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해 독일 3사가 직원 감축을 골자로 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120년간 이어졌던 수직 하청구조의 변화와 제조 공정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어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비용 저생산이라는 고정 공식이 국내 완성차 업계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꼽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현대차의 강성 노선 탈피는 산업 위기를 합리적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존재하기 힘들다는 전제 아래 노사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주력 모델의 증산 협의도 노사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현대차에 따르면 11월 누적 해외 판매는 총 334만912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33만7800대)보다 4.9% 감소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실리 노선의 새 집행부가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의 미래차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판매량에 걸맞은 완성도와 생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