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ㆍ유족 등 5명에 1억여 원씩 배상 판결 -“일본 정부 기망에 의해 강제 연행”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도 확정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들에 이어 여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29일 양금덕(87) 씨 등 5명이 일본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결에 따라 미쓰비시는 양 씨 등 3명에게 각각 1억 2000만 원, 이모(88) 씨에게 1억 원, 사망한 부인과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낸 유족 1명에게는 1억 208만 3333원의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을 진다.
양 씨 등은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에 지원해 1944년 일본 나고야에 위치한 공장에서 비행기 부품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임금을 지급받지 못했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렸다. 양 씨 등은 1999년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국내 법원은 양 씨 등의 청구권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양 씨 등은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강도, 환경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기망에 의해 강제 연행됐다”고 봤다. 또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는 개인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날 같은 재판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미쓰비시가 고(故) 박모 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각각 80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을 낸 지 무려 18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확정했다. 2000년 소송을 제기할 땐 원고 가운데 1명을 제외하고 생존해 있었지만 현재 5명 모두 사망했다.
박 씨 등은 1944년 일본 히로시마로 강제징용돼 가혹한 노역을 당했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1990년대에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과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한 뒤 2000년 국내 법원에 같은 소송을 제기했다. 1ㆍ2심은 모두 청구권 소멸을 이유로 미쓰비시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지만 2012년 대법원은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2013년 부산고법은 미쓰비시가 8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제 노역을 한 피해자들에게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이 잇따라 내려지고 있지만, 실제 배상을 받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일본 기업이 배상을 거부할 경우 법원은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지만, 국내 재산에 한정될 뿐 일본 현지 재산에 손을 대기 위해서는 일본 사법당국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3년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이 없다는 판결을 확정했기 때문에 우리 법원의 강제집행 요청을 승인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법농단 의혹과도 관련이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소송의 확정 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차한성ㆍ박병대 전 대법관을 불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관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판결 지연 방안을 논의한 배경을 조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