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외 자금 조성 사실만으로 횡령죄 적용 어려워 -실 사용처 파악해야…전·현직 법원장 줄조사 불가피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이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을 끌어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이다. 구체적으로 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용처를 파악하는 게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9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대법원 예산담당관실과 재무담당관실에서 확보한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내역을 검토 중이다. 검찰은 2015년 신설된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이 현금화돼 법원행정처에 전달됐고, 2015년 3월 열린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법원장 1인당 수천만원 씩 지급한 사실을 파악했다.
대법원의 예산 유용에 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관련자들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횡령이 유력하다. 다만 2015년 배정된 예산이 3억 5000만 원인 만큼 횡령액이 5억원 이상일 때 무겁게 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판례상 자금을 빼돌렸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부당한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까지 입증해야 횡령죄 적용이 가능하다. 법원이 지난해 3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된 롯데건설 임원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에서도 롯데건설이 하도급 업체에 공사대금을 부풀려 지급한 뒤 돌려받는 수법으로 부외 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검찰이 구체적인 자금의 용처를 입증하지 못해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이 이 자금 운용을 범죄 혐의로 구성한다면, 강형주(59·사법연수원 13기) 변호사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련해서는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주요 수사 대상이었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사법행정 실무를 총괄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 8월부터로, 이미 전국 법원장 회의에서 돈이 배분된 이후다. 임 전 차장의 전임자였던 강 변호사는 2014~2015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한 뒤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으로 일하다 올해 사직했다. 법조계에서는 일선 법원에 배정된 예산을 현금화하고, 이 돈을 대법원장이 직접 배분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행정처 차장 선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014~2016년 법원행정처 처장을 지낸 박병대(61·12기) 전 대법관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검찰은 강 변호사와 박 전 대법관의 예전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려고 했지만,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아 무위에 그쳤다.
대법원은 3억5000만 원의 예산 대부분이 용도대로 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 예산 중 80%는 각급 법원에 다시 배정했고, 20%도 법원행정처에서 실질적인 홍보나 공보 업무에 쓰였다는 입장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예산을 ‘불법 전용’하지는 않은 게 된다. 반대로 검찰 관계자는 “대외활동비 내지 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수사에서 돈의 용처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만큼, 자금을 수령한 법원장급 인사에 대한 줄조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