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극 충격’ 방배초 등교 지도 모방범죄 걱정…아이 함께 나서 “사건 5시간 뒤 공문 발송” 분통

“만약 여러 명을 노린 테러였다면 어땠겠어요? 그때도 학교가 이렇게 대처했을거라고 생각하면 끔찍해요.”

3일 서울 방배초등학교 앞은 아이들 등교 지도에 직접 나선 학부모들로 붐볐다. 전날 벌어진 인질극 이후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오전 11시 33분께 “졸업증명서 떼러왔다”며 학교에 출입한 양모(25) 씨는 교무실에 난입해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을 붙잡고 1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외부인의 학교 출입 때 반드시 학교보안관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일일방문증을 받도록 한 보안절차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서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초등생 인질극에 뿔난 방배초 학부모, “학교도 보안관도 못 믿어”…내 아이 손잡고 등교길 행렬
3일 서울 방배초등학교 앞에서 직접 아이들 등교지도에 나선 학부모들의 모습. 김유진 기자/kacew@heraldcorp.com

2학년 손주 손을 잡고 등교길에 나선 할아버지 이재룡(77ㆍ가명) 씨는 “애 엄마가 놀라서 전화해 인질극에 대해 알았다. 보안 좀 잘 하지”라며 혀를 끌끌 찼다.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정모(43) 씨는 “범인이 잡혔다고 해도 모방범죄 같은 게 인근에 일어날까 불안해 데려다주러 왔다. 당분간은 불안하니까 같이 등교하겠다는 엄마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들 학부모들이 직접 아이 손을 잡고 등교길에 나선 이유는 전날 발생한 인질극을 둘러싼 학교 측 부실대응 때문이다.

두 자녀가 방배초 3학년, 6학년이라는 학부모 정애령(37ㆍ가명) 씨는 사건 발생 후 5시간이 지나서야 공문을 발송한 학교측에 분통을 터뜨렸다. 전날 인질극을 벌인 양모(25) 씨는 1시간여 대치한 경찰에 오후 12시 40분께 제압당했지만 담임 교사로부터 발송된 메시지는 1시간 20분이 더 지난 2시 3분에 왔다.

정 씨가 ‘학교 비상상황으로 인해 점심식사 이후 (아이들을) 안전하게 하교시켰으니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했는지 확인부탁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두 아이 모두가 귀가했을 때였다. 정 씨가 이보다 앞선 오후 1시 27분경 받은 학교 측 연락이라곤 당일 방과후 학교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전체 공지 뿐이었다.

동네주민 박경애(50ㆍ가명) 씨는 학부모에게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아이들을 평소보다 일찍 하교시킨 학교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박 씨는 “학교가 평소보다 1, 2시간 일찍 끝나게 됐으면 아이들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알려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평소 귀가시간에 맞춰 일을 보던) 부모들이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몇몇 아이들은 거리에서 배회했다”고 혀를 찼다.

“허술해진 보안절차가 결국 이 사달을 낸 거라고요”. 학교 정문에서 제대로 외부인 출입 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보안관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학부모 정희준(37ㆍ가명) 씨는 “최근에 얼굴이 익숙한 학부모들을 신분증 확인이나 서류 작성 없이 출입시켜주는 걸 여러번 봤다”고 지적했다. 양 씨가 정식 보안절차를 거치지 않고 손쉽게 교무실로 향할 수 있었던 상황은 전날에만 발생한 특수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3일 10시 교장선생님과 학부모 간담회를 부랴부랴 열었다. 하지만 간담회 사실을 e알리미, 스쿨맘 등 공식 어플리케이션 전체공지를 발송하는 대신 학부모 단체 카톡방을 통해서만 알음알음 알리면서 학교를 향한 학부모들의 불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