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적시 명예훼손 처벌 가능 표현의 자유 위한 폐지 목소리

“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이 저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김모 씨)

“제 이름을 보도하면 가해자 신상도 드러날 수 있으니 익명 처리 부탁드립니다.” (고교시절 겪은 동급생간 성폭력을 고발한 K 씨)

정치인 등 공적 인물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미투 운동은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한 채 이어지고 있지만, 일상의 성폭력을 고백하는 일반인들에겐 실명 공개는 ‘남의 일’이다. 가해자가 ‘공적 인물’이 아닐 경우,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법률전문가에 따르면 대부분 무고죄는 주장의 허위 여부가 관건이지만, 명예훼손죄는 사실 여부보다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주장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은 거짓을 적시한 경우에 비해 처벌 수위만 낮을 뿐,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형법 제307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70조도 ‘남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한다.

이같은 사법적 현실은 “떳떳하면 실명으로 미투하라”는 일각의 비판이 그릇된 것임을 드러내준다. “왜 실명으로 미투하지 않느냐”는 비판은, 실제 성폭력 피해자 다수가 무고죄 성립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하는 상황을 간과한 것이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들 다수는 무고죄보다 명예훼손이 걱정돼 실명 미투를 주저한다. 지난 19일자 본지 기사([단독]물꼬 터진 남성 미투…“학창시절 제 별명은 ‘남창’이었습니다”)를 통해 보도한 성폭력 피해자 K(24) 씨 역시 본인의 신상을 거듭 익명처리해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본인 신상이 노출돼 가해자까지 드러날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 끝에 내린 결정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 주장도 나온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익명으로 고발할 수밖에 없었던 K 씨는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처벌은 당연하지만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용기있는 미투 고백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로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사회 각 분야의 내부고발자도 마음놓고 등장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한국사회 전반’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진실 유포죄’로 비유한 동명의 저서(2012, 다산초당)에서 “국민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알지 못할 경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가 없다. 익명 보도는 유사인물에 대한 피해도 낳는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를 근거를 든다.

피해자를 향해 “떳떳하면 실명으로 말하라”고 종용하기에 앞서 떳떳하게 실명을 드러내도 죄가 되지 않는 조건부터 만들어야하며, 익명 미투의 폐해는 그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김유진 기자/kac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