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남 ‘흙살림 생활농장’ 대표혈관질환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 얼마나 땀을 흘리느냐고요? 과장을 보태면 우리 동네 사람이 모두 와서 목욕을 해도 될 정도예요. 요즘처럼 추수할 때가 1년 중 가장 힘들고 바쁩니다. 아들ㆍ딸도 주말에 가끔씩 와서 돕고 있어요.”

‘친환경농업의 대부‘로 통하는 충북 음성군 원남면 흙살림 생활농장 성기남 대표(67·사진)를 추석 연휴 직전에 만났다. 성 대표는 농고 재학 1년생이던 1965년도부터 학업과 농사를 병행했다. 일찍이 웰빙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요구를 읽고 50여 년간 고된 친환경농업을 고집스레 실천하고 있다.

그는 현재 고추를 비롯해 서리태ㆍ고구마ㆍ옥수수ㆍ참깨ㆍ들깨ㆍ인삼ㆍ양배추 등 9가지 작물을 친환경 농법을 이용해 키우고 있다. 보통 한두 가지 작물만 키우는 농가가 대부분이지 이렇게 여러 작물을 한꺼번에 키우는 농민은 전국에서도 몇 안 된다. 이런 독특한 작물 재배 방식은 친환경 농사에 대한 그의 철학에서 나온다. 그는 윤작(輪作, 같은 땅에서 일정한 순서에 따라 종류가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경작방식)이 유기농법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돈이 되는 한두 가지 작물만 같은 자리에 계속 재배하면 땅이 ‘힘들어’ 해요. 올해 이 작물을 심었으면 이듬해엔 다른 작물을 심는, 윤작이 유기농업의 ‘꽃‘이죠. 단지 유기비료를 쓴다고 유기농업이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서 ‘유기적’으로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살리는 농업이 유기농업입니다.”

그는 작물도 사람처럼 각자 원하는 게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양한 작물을 돌아가며 심으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형제가 있어야 건강하게 자라듯 논밭에도 다양한 종(種)이 어울러 있어야 자연생태계도 건강해진다고도 비유했다.

실제로 한 가지 작물만 있을 때보다 여럿이 섞여 있을 때 해충이나 병에도 강해진다는(면역력 강화) 것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성 대표는 가끔 귀농 희망자를 대상으로 유기농 농법 강의도 한다. 강의는 항상 “유기농은 힘드니까 처음부터 도전하지 말라”는 얘기로 시작한다. 유기농이나 친환경농법으로 농사짓는 농민의 어려움을 사회가 헤아려 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역설적 표현이다.

“내 식구가 먹을 음식에 건강에 해로운 농약을 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정신 나갔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친환경 농사를 짓는 거지, 돈 욕심 가지면 유기농은 못합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농사꾼의 본분이라 생각합니다.”

그에게 흙은 ‘어머니’다. 그동안 다량의 농약ㆍ화학비료를 뿌려 우리 땅이 핍박ㆍ수탈을 받아왔다고 생각한다. 이 ‘병든 어미’를 살려내는 것이 유기농ㆍ친환경이라고 믿는다. 성 대표는 친환경농업을 뒷받침하는 농자재를 생산ㆍ공급하는 ‘흙살림’(사단법인)의 설립(1991년)에도 기여했다. 흙살림은 생명의 어머니인 땅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기농 자체보다 제대로 된 밥상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 여긴다. 그러려면 바른 유기농업이 전제돼야 한다. 그가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소비자가 보기 좋은 농산물만 선호할 게 아니라 조금 눈에 거슬리더라도 친환경적으로 키운 농산물을 선택하고 아껴줘야 바른 유기농업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친환경 농업을 살리는 데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최근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소비자의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 것을 안타까워했다.

“친환경 인증을 받았더라도 매년 검사하고 심사해서 농약 등이 검출되면 친환경 인증이 취소됩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도 수시로 수거해 검사합니다. 1년 열심히 키운 농사에 병해충이 들어 친환경 인증 자격을 지키지 못한 생산자가 더러 있지만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초심을 지킨 대다수 친환경 농민의 노력은 소비자가 꼭 알아주길 바래요. 도매급으로 넘어 간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죠.”

김태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