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68곳 중 절반이상 답변 뇌물·뒷돈 통하는 사회풍토 비판도

기업 30%는 “정부출연요청 받아” “정당한 취지 확인땐 응할 것” 90%

지난달초 재계 총수들이 증인석에 오른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재계 총수들은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며 “청와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게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입장에선 규제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측 요청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웅변한 것이다.

‘최순실게이트’를 계기로 기업의 팔을 비트는 준조세를 근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기업의 투명경영을 막는 최대 걸림돌로 정부의 과도한 경영개입이 떠올랐다. 정부가 규제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면 정경유착의 고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4일 헤럴드경제가 대중소기업68곳을 대상으로 기업들의 투명경영 및 차이나리스크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한 결과 기업 투명경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을 묻는 질문에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과 경영압박’이라는 응답이 56.1%로 가장 많았다. 기업 10곳 중 5곳은 기업경영 활동에서 관주도 경제가 폐해를 불러온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31.8%는 ‘뇌물과 뒷돈이 통하는 사회 풍토’를 꼽았다. 이는 정경유착의 폐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정부가 규제와 인허가 등을 통해 경영활동을 통해왔다는 관주도 경제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각 정권마다 각종 명분을 내세워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걷는 일을 반복한 와중에 기업은 돈을 낼수 밖에 없고 그 대가로 이권이나 특혜를 챙겼다가 비난 받는 악습이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투명경영을 저해하는 요소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이사회와 오너일가의 모럴해저드도 꼽혔다. ‘오너와 최고경영자의 도덕적 해이‘와 ‘거수기로 전락한 이사회’라고 답한 기업은 각각 9%, 3%다.

기업 10곳 중 3곳은 정부 측 출연요청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기관이나 정부산하단체 등으로부터 출연 또는 협찬요청을 받은적이 있냐는 질문에 응답기업 중 30.2%가 ‘있다’고 답했다. 출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는 기업은 69.8%다.

기업 10곳 중 9곳은 앞으로 정부 측 기부나 출연 요청에 대해 정당한 취지와 투명한 운영계획을 확인할 경우에만 응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기관과 정부산하단체 등으로부터 출연, 협찬 요청 등을 받을 경우 처리계획을 묻는 질문에 ‘정당한 취지와 운영계획이 확인되면 응할 것‘이라는 응답이 90.2%로 가장 높았다. ‘최순실게이트’로 주요 기업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는 홍역을 치르면서 정부 사업에 기부나 출연할시 엄격한 내부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업의 납부, 정부와 정치권 사용 내역 등 일련의 과정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진행하겠다는 얘기다.

[기업경영·차이나 리스크 설문조사] “정부 과도한 시장개입·경영압박이 투명경영 걸림돌” 56%

설문에 응한 재계 관계자는 “투명성을 기반으로 모금과 집행을 진행하면 정경유착이 아닌 진정한 기부와 출연으로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준조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내지 않을 수 없다‘는 답변도 4.9% 나왔다. 각 정권이 관심사업에 반복해온 기업 수금은 법적 근거는없지만 강제성을 띠고 있어 ‘준조세’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 기부나 협찬 요청에 대해 ‘무조건 내지 않겠다’는 응답도 4.9% 나왔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의 재단 모금을 주도해온 전국경제인연합의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싱크탱크로 전환해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경련은 해체론이 불거지면서 LG그룹 등 일부 주요 기업들의 탈퇴가 잇따르면서 존폐기로에 서있다. 전경련의 바람직한 운영방안에 대해서는 ’미국 헤리티지 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의 전환해야한다’는 의견이 80.5%로 가장 많았다. 헤리티지재단은 구본무 LG회장이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에서 전경련 해체의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급부상했다. 비영리기관이지만 미국 정관계에 막강한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 역할을 하며 ‘트럼프 싱크탱크’로도 불린다.

일각에서는 기업 본연의 사회공헌단체로 가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구로 가장 대표적인 곳은 BITC이다. 1982년 설립된 BITC는 전경련처럼 영국 대기업 회장들이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 회장은 찰스 왕세자가 회장이다. 이에 반해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로 지목된 만큼 무조건 해체해야‘한다는 의견도 16.7%나 나왔다. ’기업의 목소리 대변하는 현 역할과 위상을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은 3%에 불과했다.

설문에 응해준 기업

게임빌, 경총, 금호석유화학, 금호타이어, 네시삼십삼분, 네이버, 넥슨, 넥슨GT, 넷마블, 대성그룹, 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 대홍기획, 동국제강,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지주, 락앤락, 롯데정밀화학, 롯데케미칼, 르노삼성, 모비스, 무협, 삼성SDI, 삼성SDS, 삼성그룹, 삼성물산, 삼성전자, 삼천리, 쌍용차, 아시아나, 에쓰오일, 이노션, 제일기획, ㈜넵튠, 컴투스, 코오롱, 코트라, 포스코, 한타, 한화케미칼, 현대그룹, 현대글로비스, 현대상선, 현대오일뱅크, 현대제철, 현대종합상사, 현대중공업, 현대차, 효성, CJ헬로비전, E1, GM, GS, LG CNS, LG그룹, LG상사, LG화학, NHN엔터, OCI, SKC, SK가스, SK네트웍스, SK브로드밴드, SK㈜ C&C, SK케미칼, SK하이닉스 ※가나다순

권도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