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선 ‘새역사’ 룰라는 누구
빈민가 소작농 부모 따라 도시로 이사
7세때 장사·구두닦이 등 밥벌이 골몰
부인 산재사망 사건 후 노동운동 투신
2010년 퇴임 후 옥살이에 암 투병도
가난과 병마를 이겨내고 ‘노동자들의 대변자’이자 ‘좌파의 대부’로 우뚝선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81) 브라질 대통령이 브라질 현대사 최초로 4번째 집권에 성공했다.
그는 가난과 병마를 겪으며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이어갔던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다. 브라질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정평이 난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의 소작농이었던 그의 부모는 일자리를 찾아 브라질 최대 경제 도시 상파울루로 이주했고, 아무 기반 없이 도시로 온 그의 가족들은 빈민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막내 아들이었던 룰라는 7세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를 하며 ‘밥값’을 벌어야 했고, 공부할 여력이 없어 10살 때까지 글을 읽고 쓸 줄도 몰랐다고 한다.
간신히 글을 뗀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둔 후 14세부터 상파울루 인근 상베르나르두두캄푸 지역의 한 금속업체에서 공장 근로자로 일했다. 노동자로 사는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세 때인 1964년, 작업 중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고, 5년 뒤에는 함께 공장을 다녔던 첫 부인과 사별했다. 당시 임신 상태였던 부인은 산업 재해성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부인의 죽음으로 노동자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에 분노한 그는 노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75년에는 10만명의 노조원을 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앞장서며 구속과 같은 탄압에도 불구하고 잇따른 파업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80년엔 상파울루시 인근 3개 지역 노조가 참여한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 초 산별노조와 좌파 지식인들을 규합해 노동자당(PT)을 창당한 룰라는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1984년부터 대통령 직선제 쟁취 투쟁에 매진한 그는 1986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데뷔했다.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1989년 대통령 직선제 선거부터 내리 7번을 대권에 도전했다. 여기에서 3번 연속 패배 후 4번 연속 승리라는 이색 기록을 냈다. 1989년에 이어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도 보수파 후보에게 연이어 무릎을 꿇었던 룰라는 2002년 대선에서 3전 4기 끝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2006년에는 연임에 성공했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빈민 구제에도 성과를 내 2010년 임기를 마친 뒤 물러날 당시 그의 지지율은 80%대에 달했다.
퇴임 후에는 측근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비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 역시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2016년에 구속된 뒤 이듬해 1심에서 9년 6개월, 2018년 2심에서 12년 1개월의 징역형을 받아 590일간 옥살이를 했다. 여기에 그는 여러 차례의 암과 항암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여러모로 그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감옥에서 귀환한 그는 다시 세를 규합해 2022년 대선에 재도전해, 군인 출신의 강경 우파 지도자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대통령을 꺾고 대권을 차지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의 아들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을 상대로 초박빙 승부를 펼친 끝에 대역전극을 쓰며 통산 4선에 성공했다. 특히 이번 선거는 보우소나루 후보뿐 아니라 우파 진영을 지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중남미의 ‘블루타이드(우파 세력 집권)’를 바라는 외부 세력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더욱 값진 승리라 할 수 있다. 도현정 기자
kate01@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