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첸이 밥솥에 사용되는 내솥에 티타늄 소재를 적용했다. 최근의 식감 트렌드를 반영해 ‘탱글탱글’한 밥알이 살아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쿠첸측의 설명이다. 쿠첸 밥솥개발팀 염규현 팀장이 ‘티타늄 내솥’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쿠첸이 밥솥에 사용되는 내솥에 티타늄 소재를 적용했다. 최근의 식감 트렌드를 반영해 ‘탱글탱글’한 밥알이 살아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쿠첸측의 설명이다. 쿠첸 밥솥개발팀 염규현 팀장이 ‘티타늄 내솥’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신제품 밥맛 개발에 쌀 810kg·5400인분…120일간 밥 짓고 또 지어

티타늄 내솥에 ‘마이크로 그리드’ 적용…탱글백미 직접 맛보니 밥알 식감 ‘또렷’

2.2기압 누설 전수검사부터 소음·열충격·2만5000회 내구성 시험까지

쿠첸 ‘밥맛 연구소’가 기자의 방문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두가지 백미. 하나는 ‘탱글백미’고 또다른 하나는 ‘찰진백미’다. [홍석희 기자]
쿠첸 ‘밥맛 연구소’가 기자의 방문을 염두에 두고 준비한 두가지 백미. 하나는 ‘탱글백미’고 또다른 하나는 ‘찰진백미’다. [홍석희 기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충남 천안 쿠첸 사업장.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예상하지 못한 냄새가 먼저 코끝을 때렸다. 그간 여러 공장들을 돌며 익숙하게 느껴졌던 플라스틱 냄새나, 기름냄새, 금속 냄새도 아니었다. 갓 지은 ‘밥 냄새’였다. 가전제품을 만드는 공장에 왔다는 사실을 잠깐 잊게 할 정도로 진했다.

“오늘 오신다고 해서 밥을 미리 해놓았습니다.”

쿠첸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서야 쿠첸 천안사업장 내에 갓 지은 밥 냄새가 가득한 이유를 알았다. 이날 준비된 밥은 두 종류였다. 기존 방식으로 지은 ‘찰진백미’와 티타늄 내솥의 특성을 살려 개발했다는 ‘탱글백미’. 흰밥 두 그릇을 나란히 놓으면 얼핏 큰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숟가락으로 떠 입에 넣자 식감이 확실히 달랐다. ‘블라인드 테스트’였지만 씹히는 식감의 차이는 어느것이 탱글백미인지, 어느것이 찰진백미인지를 확연히 구분 가능하게 했다.

탱글백미는 말 그대로 밥알 하나하나가 입안에서 따로 느껴졌다.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는 찰진 밥보다 낱알의 윤곽이 또렷했다. 즉석밥을 데워 막 꺼냈을 때 느껴지는 고슬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과도 닮았다. 개인적으로는 탱글백미 쪽에 손이 한 번 더 갔다. 밥 한 공기의 맛을 달리하기 위해 이 공장에서는 생각보다 상상키 어려울만큼 많은 밥을 짓고 있었다.

밥맛 연구소에 설치돼 있는 계측기. 밥솥의 온도와 기압 등이 모두 데이터화 돼 컴퓨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느 기계 장치다. [홍석희 기자]
밥맛 연구소에 설치돼 있는 계측기. 밥솥의 온도와 기압 등이 모두 데이터화 돼 컴퓨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느 기계 장치다. [홍석희 기자]

쌀 810kg로 5400인분…‘밥맛 연구소’의 하루

쿠첸 밥맛 연구 공간 벽에는 ‘밥 알고리즘 개발 PROCESS’라는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10인용 밥솥을 기준으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120일. 개발 메뉴는 15개, 총 취사량은 5400인분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쌀만 81만g, 810kg이다.

메뉴 개발이 본격화하면 연구원 한 명이 하루에 20kg짜리 쌀 포대를 두 포 이상 쓰기도 한다. 한 번에 밥솥 6대를 돌리고 이를 하루 6~7차례 반복한다. 메뉴에 따라 취사 시간이 10여분인 것도 있고 40분이 넘는 것도 있다.

밥을 짓는다고 끝이 아니다. 불림 시간, 가열 속도, 온도와 압력을 바꾼 뒤 결과를 다시 비교한다. 쌀의 양도 변수다. 밥솥은 센서의 온도 상승 속도를 토대로 몇 인분이 들어갔는지 판정하고 양에 따라 다른 취사 알고리즘을 적용한다.

민윤경 쿠첸 밥맛연구소 책임은 “처음 먹었을 때 씹히는 식감과 목으로 넘길 때의 느낌, 촉촉함과 윤기가 조화를 이뤄야 맛있는 밥이라고 느낀다”며 “소비자 취향에 맞는 밥맛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온도, 압력을 조절하고 분석해 취사 알고리즘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쿠첸이 밥맛 변화를 위해 손댄 핵심 부품은 내솥이다. 티타늄을 적용했다.

출발은 기존 내솥의 장단점을 한꺼번에 보완해보자는 것이었다. 코팅 내솥은 밥이 잘 달라붙지 않지만 장기간 사용 과정에서 표면 마모로 인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나온다는 소비자 우려가 있다. 스테인리스 내솥은 내구성이 강하지만 상대적으로 밥이 눌어붙기 쉽다.

쿠첸 연혁
쿠첸 연혁

염규현 쿠첸 밥솥개발팀장은 “달라붙지 않으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고민에서 티타늄 소재 연구를 시작했다”며 “개발에 1년8개월에서 2년 정도가 걸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공이었다. 티타늄은 단단하다. 평평한 판재를 밥솥 안에 들어가는 둥근 내솥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 번에 힘을 줘 찍어낼 수도 없다. 여러 차례 성형하고 가공해야 한다. 염 팀장은 “소재를 만들 때도 시행착오를 겪었고 안쪽 텍스처를 만드는 과정, 내솥 형상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계속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티타늄 내솥 안쪽을 자세히 보면 매끈한 평면이 아니다. 미세한 격자 형태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쿠첸이 ‘마이크로 그리드 텍스처링’이라고 이름 붙인 구조다. 물을 끓이면 차이가 난다고 했다. 염 팀장은 일반 내솥과 티타늄 내솥에서 물이 끓는 영상을 직접 보여줬다. 영상에선 미세한 격자 주변에서 작은 기포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대류가 활발해졌다. 같은 공간에서도 물과 열이 움직일 수 있는 표면적을 넓혀 내솥 전체에 열이 고르게 전달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염 팀장은 “실제로 물을 끓여보면 텍스처링이 있는 쪽에서 작은 기포가 훨씬 많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밥 안에 열을 고르게 전달하고 이후 시간과 가열량을 알고리즘으로 조절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탱글백미다. 과거 압력밥솥이 ‘찰진 밥’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소비자의 입맛이 변하면서 밥알이 살아 있는 식감을 원하는 수요도 늘었다는 게 쿠첸의 판단이다. 민 책임은 “연령대가 높은 소비자는 찰진 식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젊은 층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슬한 식감을 선호하는 모습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쿠첸 천안 사업장 내 설치된 로봇 팔. 과거엔 사람이 하던 일을 지금은 로봇이 대신 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쿠첸 천안 사업장 내 설치된 로봇 팔. 과거엔 사람이 하던 일을 지금은 로봇이 대신 하고 있다. [홍석희 기자]

2.2기압 넣고 ‘새나 안 새나’…한 대씩 모두 검사

밥맛 연구 공간을 빠져나와 1층 생산라인으로 내려오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용히 밥을 맛보고 그래프를 들여다보던 연구실과 달리 조립라인에서는 작업자들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뒤집힌 본체가 컨베이어를 따라 이동했고 그 위로 부품이 하나씩 얹혔다. 곳곳에서 체결 작업이 이어졌다.

라인 위 현황판에는 생산 중인 모델과 계획 수량, 현재 투입량, 완성된 수량이 실시간으로 숫자를 바꾸고 있었다. 제품에 붙는 고유 라벨의 바코드가 읽히는 순간 한 대가 시스템에 등록된다.

“이 라벨이 제품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느 시점에 생산됐는지,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등을 추적할 수 있다. 실제 불량이 발생하면 해당 제품의 모델과 생산 순번, 불량 내용이 시스템에 남는다.

밥솥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뚜껑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조립 부품 가운데 비용 비중이 큰 부분으로 뚜껑 부분과 밥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전자제어 부분을 꼽았다. 특히 압력밥솥에서 뚜껑은 안전과 직결된다. 높은 압력을 버텨야 하고 압력을 통제하는 여러 장치도 들어간다.

쿠첸 ‘123 밥솥’은 최대 2.2기압을 구현한다. 압력이 높아지면 물이 끓는 온도도 올라간다. 1기압에서 물의 끓는점은 100도지만 2.2기압에서는 123도 수준으로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높은 온도로 잡곡 등을 보다 부드럽게 익히는 것이 목적이다. 숫자 ‘123’을 먼저 정한 뒤 압력을 맞춘 것은 아니었다.

“2.2기압으로 올렸더니 123도가 된 겁니다.” 염 팀장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0.1기압이라고 하면 작은 차이로 들리지만 밥솥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압력이 올라갈 때마다 안전장치 규격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조립이 끝났다고 밥솥이 곧바로 상자에 담기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 관문 가운데 하나가 ‘누설 검사’다. 완성된 밥솥이 검사 설비에 가느다란 호스를 통해 밥솥 내부로 수증기 압력이 들어갔다. 일정 시간 동안 압력이 유지되는지를 기계가 확인한다. 정상이라면 초록색 표시가 뜬다. 압력이 빠져나가면 불합격이다.

“압력밥솥인데 증기가 새면 밥이 제대로 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공정은 전수검사를 합니다.” 불합격 제품은 별도의 수리 공정으로 빠진다. 원인을 찾아 다시 조치하고 그 과정 역시 생산 이력에 남긴다. 회사 측은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불량률이 1%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라인 끝에서는 사람 대신 거대한 로봇팔이 기다리고 있었다. 완성된 밥솥 상자를 들어 올린 뒤 방향을 틀어 팔레트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한 층을 채우면 다시 다음 층으로 올라갔다. 기존에는 두 개 라인에서 작업자 두 명이 각각 이 일을 맡았다. 적재 자동화 로봇 한 대가 두 라인의 쌓기 작업을 맡으면서 필요한 현장 인원은 한 명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계속 무거운 제품을 옮겨 쌓는 반복 작업이라 작업자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공정 중 하나였다”며 “자동화 이후 작업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로봇은 상자만 쌓는 게 아니다. 바코드를 읽어 제품에 맞는 라벨을 자동으로 붙인다. 작업을 마친 밥솥은 곧바로 물류창고로 가지 않는다. 출하 전 다시 샘플링 검사를 거친다. 밥솥은 실제 물을 끓이고 취사와 보온, 기능 시험 등을 진행하기 때문에 한 대를 검사하는 데 4~5시간이 걸린다. 여기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제품만 2층 물류창고로 올라가 출고를 기다린다.

쿠첸 천안사업장 내 밥솥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실험을 받는다. 떨어뜨리고 극저온과 극고온을 번갈아 노출되는 등 일반적인 가정환경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상황을 재현해 그곳에서 버텨내야만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홍석희 기자]
쿠첸 천안사업장 내 밥솥들은 가혹한 환경에서 실험을 받는다. 떨어뜨리고 극저온과 극고온을 번갈아 노출되는 등 일반적인 가정환경 내에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상황을 재현해 그곳에서 버텨내야만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홍석희 기자]

흔들고, 떨어뜨리고, 2만5000번 여닫는다

생산라인보다 더 인상적인 곳은 별도로 마련된 시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밥솥은 각 가정에서 받을 스트레스보다 훨씬 고된 일을 겪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밥솥 여러 대가 전선과 측정장치에 연결된 채 쉴 새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물을 자동으로 공급하고 버튼을 눌러 24시간 반복 가동하는 장비였다. 현장관계자는 “실 사용환경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실험해 일상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제품 오작동이나 파손 등을 미리 살펴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더 안쪽에는 소음실이 있었다. 사방을 스펀지로 채워 소리가 모두 흡수되게 만든 곳이었다. 문을 닫자 바깥 공장 소리가 뚝 끊겼다. 가만히 서 있으면 오히려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이곳에서는 취사 중 나는 소음과 평소와 다른 미세한 이상음을 잡아낸다. 회사 관계자는 “밥솥은 취사할 때 나는 소음도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느끼는 부분”이라며 “제품 자체에서 발생하는 소리만 분리해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는 압력이 설계값대로 올라가는지, 압력이 기준보다 높아졌을 때 안전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폈다. 내솥을 반복해 떨어뜨리는 장비도 있었다. 버튼을 계속 누르고, 뚜껑을 열고 닫는 동작을 기계가 대신했다. 뚜껑 개폐 내구성 검사는 최대 2만5000회까지 반복한다.

끝이 아니다.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를 빠르게 오가게 하는 열충격 시험도 한다. 온도 변화로 플라스틱 부품이 수축하거나 팽창해 틈이 벌어지지는 않는지, 뚜껑을 여닫는 감각이 달라지지는 않는지를 살핀다.

밥솥이 차에 실어 운반하는 상황도 실험 대상이다. 장시간 도로를 달릴 때 받는 것과 유사한 진동을 가해 흔들림과 충격 등에 제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고, 물류창고에서 여러 상자가 위로 쌓였을 때 아래쪽 제품이 견뎌야 할 하중도 실제로 다시 재본다. 소비자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기도 전에 일부러 흔들고 누르고 달구는 셈이다.

티타늄 내솥 역시 반복 시험 대상이다. 쿠첸은 실제 소비자가 사용하는 환경을 가정해 쌀을 씻고 취사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 약 1000회 수준의 사용 시험도 진행했다. 염 팀장은 목표를 묻자 “기대하는 것은 영구적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밥솥 사용이 영구적이면 회사에선 돈을 벌기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염 팀장은 단호했다. 그는 “시너지는 다른 데서 내야한다. 고객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예전 같으면 내솥 등 소모품을 팔아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면 요새는 가성비보다는 가심비가 많이 들어가 있다. 비싸도 좋으면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오래 쓰더라도 좋은 제품으로 인지되면 우리 회사 제품 중 밥솥뿐 아니라 음식물 처리기나 전기레인지로의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밥솥에 대한 신뢰성·내구성이 다른 제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3년 쓰고 버리는 이런 제품을 저희는 만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가전제품 가운데 밥솥이 단순한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게 개발진의 설명이다. 물이 흐르고, 열을 만들고, 압력을 올리고, 뚜껑이 움직인다. 마지막에는 숫자로 측정하기 어려운 ‘맛’까지 만들어야 한다.

쿠첸 천안 사업장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밥맛 연구 공간으로 돌아오자 처음 맡았던 밥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연구실에서 5400인분의 밥을 짓고, 생산라인에서 압력을 넣어 한 대씩 검사하고, 시험실에서 다시 흔들고 떨어뜨리고 열고 닫는다. 소비자가 마지막에 확인하는 것은 결국 밥 한 공기다.

쿠첸 전경[쿠첸]
쿠첸 전경[쿠첸]
그 회사 어때?
그 회사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