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트렌드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릅니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일순간에 외면받기 일쑤입니다. ‘메가 브랜드’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유통가의 속사정, [언박싱 프로]를 통해 들려드립니다.
‘회장님, 안 됩니다’ 하고 말렸습니다. 당시 제주는 수십 차례 개발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1~2년도 안 돼서 전부 포기했죠. 우리도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겠냐고 했죠. 몇 차례 실적을 말씀드릴 때는 웃기만 하시더라고요. 대답도 안 해요. 얼마나 집념이 강하신 분인지. 계속 잘 추진 되는지 물어보시더니 결국 이뤄내시더라고요.
![녹차밭에서 묘묙을 살피는 故서성환 선대회장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6f437cba507f4f2e8ee9f57629de7432_P1.png)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대기업 화장품 회장님이 어느 날 ‘차’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회의에 소집된 임원들은 처음 ‘차(車)’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회장님이 말한 차는 ‘타는 차(車)’가 아닌 ‘마시는 차(茶)’였는데요. 제주도에 녹차밭을 만들겠다는 다소 뜬금없는 회장님의 말에 모두가 손사래를 치며 만류했다고 합니다.
차(茶)는 해외에서도 커피만큼 흔한 문화입니다. 전 세계로 여행을 가면 티백을 선물로 사 오는 풍경도 익숙하실 겁니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의 유명 차 브랜드 ‘TWG’도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오래된 전통을 가진 것 같지만, 2008년에 만들어져 아직 20년도 채 되지 않은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국내에는 TWG보다 2배가 넘는 세월을 지켜온 차 브랜드가 있는데요. 바로 ‘오설록’입니다. 지금은 녹차가 남녀노소 즐기는 음료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처럼 녹차의 산업화와 대중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쉽지 않았습니다. 화장품 회장님이 반대를 무릅쓰고 차밭을 만들러 제주로 간 이유, 이번 주 [언박싱 프로]에서 다뤄봅니다.
‘돈 안 되는’ 제주에 차밭을 만든 이유
차(茶)를 한번 해보고 싶네. 한데 중역들이 싫어해. 내 개인 재산으로라도 할 테니 아이디어를 주게. 그리고 찻잎은 내가 사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해보겠네.
![돌송이차밭 계획 부지에서 서성환 회장과 일행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f336e062f3fb48f0be767bcf9dd6fd94_P1.png)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회장은 1970년대 사업상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서 회장은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 차(茶)와 차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뛰어난 차 문화가 있었지만, 이를 잃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겁니다. 또 그는 평생 모든 일을 곱게 가꾸는 장업(裝業)에 전념했는데요. 이제는 우리 국민의 건강에도 이바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고 합니다.
1979년, 서 회장은 결국 녹차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차 사업을 펼치기엔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 사업 초반만 해도 몇십억의 투자비를 썼지만, 매출은 5000만원 정도에 불과했을 정도입니다.
처음 서 회장이 눈을 돌린 지역은 ‘제주’였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두 그를 말렸습니다. ‘기업가가 돈이 안 되는 일을 왜 하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다른 기업들이 제주에 투자한 곳들은 대부분 호텔, 골프장, 위락시설이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이 가능한 지역이었다는 겁니다.
![제주 돌송이차밭에서 채엽하는 풍경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4a7d566238ed48c6812c25fa46e8f1f8_P1.png)
하지만 척박하기로 소문난 제주의 토지에서 좋은 품질의 차를 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제주 농민들의 삶도 많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서 회장은 모두가 포기한 황무지를 비옥한 농토로 일구기 시작했습니다. 버려진 땅인 중산간 지역을 농토로 바꾸어 제주 지역민과 상생하는 것이 ‘기업가가 해야 할 일’임을 강조했습니다.
수많은 오해와 편견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대기업 회장이 차밭 개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땅 투기를 하고 있다고 오해했습니다. 개간이 어느 정도 진척되는 상황에서도 수많은 투서가 국세청 등 관계 당국에 더미를 이룰 만큼 쌓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냉대했습니다.
그러나 서 회장은 틈틈이 마을 곳곳을 돌며 차 문화 부흥의 당위성을 알렸습니다. 자신의 고향과 닮은 제주 차밭에서 마지막 보람을 다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습니다. 마침내 진심은 통했습니다. 주민들은 그의 정성 어린 모습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앞서 일본에서 어렵게 들여와 제주 농가에 대량 보급한 바나나 묘목이 주변 마을의 높은 소득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점 또한 민심을 달래는 데 주효했습니다. 주민들은 어느덧 팔을 걷어붙이고 황무지로 나와 직원들과 함께 돌을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제주 돌멩이 밭에서 시작한 오설록
![개간 전 제주 돌송이차밭(왼쪽)과 이후 모습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44634655db9c4c09b757648df49581a9_P1.png)
돌송이차밭은 오설록의 차밭 중 가장 먼저 개발됐습니다. 돌송이차밭은 한라산 남쪽의 산록도로와 중산간도로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이 지역은 화산재로 만들어진 화산송이가 많아, 돌송이라 불리기 시작했는데요. 지금의 지역명은 도순(道順)입니다.
한라산 산기슭과 마주한 경사가 깊은 도순 지역에서 첫 삽을 떴습니다. 전기와 식수가 없었고, 흙을 깔기 위해 부으면 물처럼 땅속으로 스며들어 여러 차례 흙을 실어다 부어야만 밭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기계도 넣을 수 없어 직접 손으로 돌과 잡목을 걷어내야 했습니다.
녹차 사업의 첫 번째 과제는 부지 선정이었습니다. 차나무는 연평균 기온 14℃ 이상, 연간 강우량 환경이 1600㎜ 이상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서 잘 자랍니다. 까다로운 재배 조건을 갖춘 곳이 제주의 돌송이차밭(당시 도순다원) 과 서광차밭(당시 서광다원), 전남 월출산차밭(당시 강진다원)이었습니다.
특히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태양’입니다. 돌송이차밭은 태양이 이동하는 정남쪽을 향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형 자체가 언덕이기 때문에 햇빛을 보다 효율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또 밤에는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찬 바람이, 낮에는 서귀포 앞바다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바람이 큰 일교차를 발생시킵니다. 차나무는 어려운 생육 환경을 이겨내며 특유의 향기 성분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오설록의 첫번째 녹차 제품 ‘만수’, ‘천수’, ‘백수’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46f4bf4e8cfd43fcb95685d0f928f47a_P1.jpg)
이후 1980년, 서 회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녹차를 알리기 위해 ‘눈 덮인 한라산 차밭에서 생산된 깨끗한 녹차’라는 뜻을 가진 ‘설록차’라는 브랜드를 만듭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장을 조사하고, 수천 편의 국내외 논문을 검토하며 척박한 오지의 돌과 잡목을 걷어내 완성한 첫 녹차밭. ‘오설록’이라는 브랜드 이름은 한라산 정상의 모습(雪)과 푸르른 차밭(綠)의 장관에 탄복하며 내뱉는 감탄사 ‘오’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다원이 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녹차를 수확할 수 없었습니다. 설록차는 한국제다와 대한다업에서 녹차 잎을 사와 일본으로부터 온 제다 기계와 티백 기계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백수’, ‘만수’, ‘천수’입니다.
1983년 첫 찻잎 수확…반응은 ‘싸늘’
![오설록이 1980년대 출시한 녹차 제품들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7eacbf04e8eb4585a1821d93fad3cbb5_P1.jpg)
처음 차 나무를 심은 지 4년이 지난 1983년. 마침내 처음으로 찻잎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오설록은 ‘한라진수’, ‘삼다진수’, ‘백록진수’, ‘현미티백’ 등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초창기 설록차는 ‘한국 전통차’라는 콘셉트로 제품을 홍보했습니다. 광고에는 하얀 다기에 녹차를 따르는 모습을 담았고 제품 상자에는 전통 문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오설록은 초기 녹차의 대중화를 위해 다각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했습니다. 1985년부터 다도 강사와 판촉사원을 활용하기도 했는데요. 다도 강사와 판촉 사원이 함께 기업체, 학교, 관공서 등을 방문하여 설록차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백화점이나 다방에서는 다도 강좌와 무료 시음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100만명 무료 시음을 목표로 설록차 행사도 전국적으로 시행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익숙지 않은 녹차의 쌉싸름한 맛에 ‘무슨 시래기 삶은 물을 돈 주고 사 먹으라고 하냐’라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설록이 발간한 매거진 ‘설록차’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8b8d65991f83406aa96568bd92ecafe4_P1.jpg)
오설록은 대중에게 맛과 향을 전하고자 지속해서 노력했습니다. 30년 장수 매거진이자 ‘오설록’ 모태이기도 한 ‘주간 다보’를 통해 차에 관한 지식을 전파했습니다. 녹차를 홍보하는 책자 ‘차와 건강’, ‘생활다례’ 등을 발간했습니다. 월간 녹차 교양지 ‘설록차’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1988년부터는 해마다 10만 개 이상의 1인용 다기를 만들어 설록차를 사는 고객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녹차 대중화를 위해 각종 홍보활동을 이어갔지만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초반이 되자 분위기가 반전됐는데요. 바로 성인병과 비만 등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건강한 음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녹차가 각종 성인병 예방과 미용에 뛰어나다는 연구가 잇따라 발표되며 녹차 소비는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마침내 ‘녹차는 건강에 좋은 차’라는 인식이 생겼죠. 수많은 차 농가와 제다 업체가 생겨났고, 제주에서 난 우리 녹차를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설록차도 기존 티백 제품에서 다양화된 제품들을 만들어내며 대응했습니다. 티백 외에도 음료 타입의 캔 설록차, 설록차 페트(pet)를 선보였습니다. 1997년에는 최초로 가루녹차를 만들었습니다.
![국제 녹차 심포지엄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93047d084b29432a87ee564f51d56cf7_P1.jpg)
![국제 녹차 세미나 기념사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31411d2aaefc4874828ee1ca9cb6c16b_P1.jpg)
제품에서 ‘문화’까지 발전
![오설록 제주 티뮤지엄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5b211e72a6244d28b7218a556b4e9496_P1.jpg)
오설록은 녹차 재배에 대한 오랜 경험과 과학적인 연구 성과를 통해 꾸준히 차 품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유기농 재배, 유기질 비료, 친환경 해충 방제법 등 철저한 연구와 실험으로 마침내 미국 농무부의 USDA-NOP, 유럽의 EU-Organic 등 세계적인 대표 유기농 인증을 획득하는 등 국제적 인정까지 받아냈습니다. 한국 고유의 품종을 개발하고자 기능성 품종 연구와 신품종 개발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2001년, 오설록은 제품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최초의 차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바로 오설록 서광차밭과 맞닿아 있는 ‘오설록 티 뮤지엄’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국의 전통 차 문화를 소개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티 뮤지엄을 열었습니다.
티 뮤지엄은 2023년 5월 재단장했는데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서비스와 메뉴 전반을 개선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티 뮤지엄의 연평균 방문객은 2023년 기준 200만명에 달합니다. 제주 내 무료 관광지로 운영되면서 관광객의 접근성이 높아진 덕분입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나 여행 추억에 재방문 고객도 많다고 합니다.
오설록 티 뮤지엄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오설록 티스톤’도 있습니다. 2013년에 개관한 차문화 공간으로, 제주의 땅에 한국 차 문화를 뿌리내리고자 기획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차별화된 티 코스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설록 티팩토리 전경 [아모레퍼시픽 제공]](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5/04/07/news-p.v1.20250404.4edb7ffb7d044cd99e6e22763fdb40d1_P1.jpg)
오설록의 몸집도 커졌는데요.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차밭에는 지난 2023년 9월 오설록 티팩토리가 준공됐습니다. 오설록 제품에 대해 연간 646톤의 제조 능력과 8600만개의 제품 출하 능력을 갖췄는데요. 단순히 증설된 신축공장의 의미를 넘어 일원화된 다(茶)류 생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최고급 차 생산지로서의 도약을 목표로 했습니다. 제주를 전 세계 차 생산의 중심지로 견인하는 새로운 동력원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외면받던 시절과 달리 이제 국내에서도 차 시장은 꾸준히 성장 중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0년 1조1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1조5800억원까지 커졌습니다. 그동안 오설록의 실적도 상승곡선을 그렸습니다. 2020년 477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937억으로 2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9267만원이었던 영업이익은 지난해 9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홈카페 문화가 본격화한 2021년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650억원, 32억원으로 전년(2020년) 대비 무려 36.2%, 3386.3% 뛰기도 했습니다. 초기 매출이 수천만 원에 불과했던 오설록이 이제는 영업이익마저 억 단위로 늘어나게 된 겁니다.

‘글로벌 티 브랜드’로 성장
오설록의 마케팅 전략은 어떨까요.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과 젊은 세대(GenZ) 고객 선호를 반영해 내용물을 증량하고 있습니다. 신제품 출시와 리뉴얼을 통한 상품 경쟁력도 강화 중입니다. 카카오뿐 아니라 네이버, 마켓컬리, 올리브영 등 온라인 입점몰의 운영 성과를 기반으로 매출과 이익이 성장 중입니다.
오설록의 국제적인 위상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한 공항 면세점에서는 ‘오설록’이 푸드 카테고리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면세점 관계자에 따르면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오설록 브랜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실제로 오설록은 2023년부 미국 시장 내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기네스 팰트로, 제시카 알바 등 유명 셀럽들과 협업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커머스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아마존에서는 대형 행사를 중심으로 매년 성장을 기록 중입니다. 유기농·천연 식품을 취급하는 전문 버티컬 몰에도 입점을 추진하며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쌓고 있습니다. 오설록은 앞으로도 해외 고객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경쟁력 강화하겠다는 목표입니다.

이번 언박싱 프로는 40년이 넘는 오설록의 역사를 시작했던 서성환 선대회장의 말을 전하며 마무리 지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차(茶)라는 게 없지. 보리차나 숭늉이 전부야.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일본의 차 문화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다듬고 가꾸어서 세계에 자랑하고 있어요. 산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있고. 이제 나라도 나서서 차 문화를 보급하고 전파해야겠어요. 사실 이런 문화 사업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대기업들이 앞장서야 하건만 그들은 타산이 맞지 않으니까 손을 대지 않아요. 그러니 나라도 녹차를 우리 고유의 차로 다시 키워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