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 역임 박상융 변호사
“구두 주장, 모욕죄 성립 가능”
수사 경찰 “정식 신고 절차 거치지 않아”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만취한 채로 40대 가장을 가족이 보는 앞에서 이유 없이 폭행한 후 출동한 경찰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몰아간 20대 여성의 무고 혐의에 대해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증거불충분으로 지난 14일 불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여성이 주장만 했을 뿐 공식적인 신고 절차는 없었다는 것을 무혐의 판단의 근거로 내세웠다.〈헤럴드경제 2월 21일자 온라인판 참고〉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혐의가 없는 사실을 주장한 것만으로도 신고 요건에 충족할 수 있다며, 경찰의 판단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무고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장을 지낸 법무법인 한결의 박상융 변호사는 “형법상 ‘신고’는 반드시 고소장을 작성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피해자의 처벌을 목적으로 없는 혐의를 경찰관에게 구두로 주장한 것 역시 신고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무고죄 혐의를 물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률사무소 사월의 노윤호 대표변호사 역시 “혐의 없는 행위에 대해 고소장을 접수하지 않더라도 주장을 하거나 진술만으로도 무고죄는 성립이 가능하다”고 했다.
형법 제156조에 따르면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 사실을 신고하는 죄다. 여기서 신고는 형식에 제한이 없어 이번 사건과 같이 구두(口頭)도 포함이 된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앞서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7월30일 오후 10시30분께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 산책로에서 가족과 산책하던 40대 남성 B씨의 아들에게 맥주캔을 건네고 이를 마시지 않자 뺨을 때렸다. B씨가 자리를 떠나려는 A씨를 붙잡자 무차별 폭행이 시작됐다. A씨는 출동한 경찰관에게 B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폐쇄회로(CC)TV 분석까지 했으나 그런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경찰관에게 ‘폭력을 쓴다, 추행했다’고 서너 차례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A씨가 폭행과 추행에 대한 신고 내용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경찰관에게 B씨의 형사처벌을 구하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며 “A씨가 정식 신고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찰은 모욕죄의 경우 영상 증거 등에서 공연성(여러 사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성질)이 확인돼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지난 14일 검찰에 송치했다. 여성의 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다.
한편 사건 당시 B씨의 아내, 아들, 딸은 현장을 지켜봤다. 우리 나이로 6살이었던 딸은 정신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