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적 운신폭도 좁혀
미중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19 방역 국제연대의 중심이 돼야 할 두 나라의 갈등으로 전대미문의 전 인류적 재앙에 직면한 국제사회는 ‘통합지휘부’ 없는 방역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힘없고 돈없는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고스란히 입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어떤 미친 사람(wacko)이 방금 수십만명을 죽인 바이러스에 대해 중국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중국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같은날 워싱턴 국무부청사에서 열린 언론브리핑을 통해 중국을 ‘악랄한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홍콩 및 대만 문제와 관련한 고강도 비판을 쏟아냈다.
두 사람이 같은날 중국에 대한 비난공세를 퍼부은 것은 다분히 선거전략적 측면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국이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를 진행 중인 와중에 외교적 금도를 넘어선 공격에 나선 것은 트럼프의 재선전략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마침 영국의 경제분석기관인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지난 20일 발표한 미국 대선 예측보고서에서 트럼프가 올해 대선에서 전국 득표율 35%에 그쳐 ‘역사적 패배’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기관은 실업율, 가처분소득, 인플레이션 등 경제지표만을 이용해 미 대선을 예측해 왔으며 지난 1948년 이후 치러진 18번의 대선 중 16번을 맞췄다.
지난해 11월 이 기관은 트럼프가 전국 득표율 55%로 승리한다고 예측했었다. 6개월 사이 승리 예측이 뒤바뀐 셈인데, 코로나19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이로 인한 경제 악화가 재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핵심 변수임이 드러난 것이다.
물론 다른 쪽에서는 이 기관의 분석이 경제지표만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국내정치와 외교적 변수를 감안한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심각한 난관이 생겼다는 것은 대다수 분석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에서 20세기 이후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지미 카터(1980년)와 조지 부시 시니어(1991년) 등 2명 뿐이다. 두 사람의 재선 실패는 모두 경제불황이 핵심요인이었다. 최근 120년 동안 미국 대통령 재선 캠페인에서 당락을 좌우한 핵심 변수는 경제불황이었다.
미중 무역갈등을 불사하면서 내수를 일으킨 트럼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휘청거리면서 재선 캠페인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진영은 이 상황을 돌파하는 선거 전략으로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적을 잡는다’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동양식 군사전략의 고전적 수법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미중간 극한 갈등은 코로나19에 대한 국제적인 방역연대를 가로 막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미중의 각축장으로 변했고 이런 와중에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수는 32만명을 넘어섰다. 환자수도 500만명을 넘어서 그야말로 미증유의 인류적 재앙이 닥친 것이다.
미중 갈등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외교적 운신폭을 크게 좁히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두 나라 사이에 끼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의 외교안보 당국은 미중 갈등을 모니터하고 분석하는 전담조직을 운영해 국익에 최대한 부합하는 외교전략을 짜야할 것이다.
미중 갈등은 단기적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 계속 증폭되겠지만, 대선 이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갈등구조의 고착화 현상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중 갈등의 본질이 세계 패권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의 성격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국제질서의 변화를 몰고올 미중 갈등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 =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 언론인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에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와 남양주시 국제협력 특별고문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