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탄생 250주년…클래식계 ‘핫 아이콘’
“베토벤은 시대를 초월한 일상의 음악”
마에스트로 쿠렌치스, 마르쿠스 슈텐츠…색다른 베토벤 보여줄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잠에서 막 깨어난 어린 아이가 군중과 함께 신세계로 걸음을 옮긴다. 그 곳은 어쩌면 희망의 나라(리니지M). 여기엔 베토벤의 ‘합창’이 흐른다. 진한 소스와 탱탱한 면발의 운명적 만남(오뚜기 진짜장). 광고에는 ‘운명’ 교향곡이 입혀졌다. 혁신가의 음악은 이른바 삼신가전(새롭게 등장한 필수가전이자 신의 선물 같은 세 가지 가전)의 하나인 ‘식기세척기’(LG디오스)에도 등장했다. 베토벤이 남긴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탄생 250주년을 맞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은 현재 전 세계 클래식계의 ‘인싸’(인사이더)로 떠올랐다.
베토벤을 향한 열광은 사실 새삼스럽다. 베토벤은 클래식계의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광고계의 ‘핫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노승림 숙명여대 겸임 교수는 “베토벤은 일상의 음악”이라고 했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곡가이자 음악가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의 음악이 시대를 넘나들며 연주, 재생산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노 교수는 “베토벤의 음악은 시대와 유행을 초월한 현대성”을 갖췄다고 했고, 장일범 클래식 평론가는 “형식미가 잘 갖춰져 있으면서도 고전주의 시대를 벗어난 음악이 보인다”고 말했다. 음악적으로는 “리듬의 변형이나 예측불허의 시도를 많이 하고, 불협화음을 종종 사용하며 재즈적인 요소”(노승림 교수)까지 담았다.
전문가들은 클래식 음악계는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베토벤이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전환기 시대를 관통한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이 ‘조화’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베토벤 이후의 시대는 “인간의 고난과 비극을 노골적으로 표현”(노승림 교수) 했다.
베토벤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청력 상실의 고통 속에서 태어난 곡들은 그럼에도 혁신적이다. 노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베토벤은 고난과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의지를 부추기는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후대 작곡가에게 미친 영향도 크다.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가 베토벤의 영향을 받았다. 장일범 평론가는 “현대의 베토벤은 쇼스타코비치”라며 “‘고통에서 영광으로, 영광에서 광명으로’라는 주제를 내세우는 베토벤과 쇼스타코비치는 같은 일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빌리 조엘의 ‘디스 나잇’(This night)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2악장을 사용했다.
베토벤의 연주 방식에도 트렌드는 있다. 19세기만 해도 베토벤의 음악은 어렵고 난해하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악기가 쫓아갈 수 없어 완벽한 연주는 불가능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달라졌다. 이 시기는 베토벤의 ‘낭만주의 연주’가 무르익은 때다.
노 교수는 “20세기에 접어들어 스틸 현을 사용한 현악기가 등장했다”며 “악기의 소리가 커지고, 연주자들의 기교도 일취월장하며 감정을 과잉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장 평론가는 “카라얀과 같은 20세기 지휘자가 낭만주의 스타일로 비브라토를 많이 넣어 천천히 연주하게끔 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말에는 작곡가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해 해석하려는 ‘역사주의 연주’ 움직임이 ‘대세’였다. 악보대로 연주하고자 하는 ‘원전 연주’의 시대였다.
지금의 트렌드는 두 가지를 절충한 형태다. 현대의 악기를 사용해, 역사주의 연주의 기법을 반영하는 ‘절충주의’ 시대에 돌입했다. 장 평론가는 “사이먼 래틀과 같은 지휘자가 고수한 방식을 오늘날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주자에게 베토벤은 ‘최고의 경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연주 양식의 변천사를 겪으며 워낙에 다양한 베토벤이 생겨났다”며 “이러한 이유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는 연주자는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올해에는 보다 색다른 베토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올해 주목할 베토벤 공연으로 마에스트로 테오도르 쿠렌치스의 공연을 꼽는다. ‘클래식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쿠렌치스는 오는 4월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4월 7일과 8일 열리는 공연에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5번과 7번을 선보인다. 장 평론가는 “쿠렌치스의 공연은 일사분란하고 혁신적이다”라며 “고음악과의 절충형을 선보이는 천재적인 해석으로 재밌는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일간의 공연에선 ‘맨발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서울시향과 마에스트로 마르쿠스 슈텐츠(7월 3~4일, 9~10일)의 베토벤도 ‘재밌는 공연’으로 꼽힌다. 노 교수는 “마르쿠스 슈텐츠는 파격적인 해석과 절충주의 접근으로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라고 봤다.
베토벤의 레퍼토리 중 보기 드물었던 오페라도 만날 수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편중됐던 국내 공연계에서 국립오페라단이 ‘피델리오’(10월 22~25일)를 무대에 올린다. 베토벤이 8년에 걸쳐 작곡하고 2번의 개정을 거쳐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다. 국내에선 약 30년 만에 부활한 공연으로, 가장 완벽한 오페라를 꿈꿨던 베토벤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