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태안군…학암포에 ‘친일 인사’ 詩碑 추진 논란
충남 태안군이 학암포해수욕장을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며 일제강점기 당시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 친일작품 활동을 한 미당 서정주의 시비 건립을 추진해 주민들 사이에 반발이 일고 있다. 사진은 학암포해수욕장의 일몰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운자] 전국 지자체나 시민단체 등이 친일 행적 인사들의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충남 태안군이 학암포해수욕장에 일제강점기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 친일작품 활동을 한 미당 서정주(1915~2000년)의 시비를 세우기로 해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태안군은 5일 군청 홈페이지에 원북면 방갈리 학암포해수욕장에 친일 행적 시인인 미당 서정주의 시(詩)‘학(鶴)’을 새긴 시비 건립을 위한 공유수면 점용·사용을 고시했다.

해당 면적은 26.3㎡이며, 점용·사용 기간은 이날부터 2034년 11월 4일까지 15년간이다. 시비는 높이 2m, 폭 1m 크기로, 다음 달 말까지 2000만 원의 군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군은 서정주가 1990년대 중반 학암포를 찾아 ‘천년(千年)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鶴이 날은다’로 시작되는 학이란 시를 쓴 것을 기념하고, 학암포를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친일 행적이 뚜렷한 서정주 시비를 설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태안군의 이번 서정주 시비 건립은 전국 상당수 지자체가 친일 행적 인사들의 시비를 잇달아 철거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여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김영인 태안군의원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옥파 이종일(1858∼1925년) 선생 생가와 가까운 학암포에 친일 행적의 서정주 시비를 건립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이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고 현지 반응을 전했다.

한 주민은 “기존에 있던 것도 철거하는 마당에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인물의 시비를 세우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서정주의 학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학암포를 홍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재”라며 “서정주의 친일 행적과 문학 작품은 별개라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