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도제 기자]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 53회 무역의날’ 기념식 행사는 ‘최순실 게이트’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호’의 오늘을 보여주고 있다.

수출 1억달러를 기념해서 만든 ‘수출의 날(1987년 무역의 날로 개칭)’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면서 무역 1조달러까지 이른 한국의 기적같은 압축성장의 상징으로 늘 주목받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휩싸인 박근혜 대통령은 행사에 불참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했다.

대통령이 무역의날 행사에 불참한 것은 1989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 동안 대통령은 2차례를 제외하고는 무역의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80% 이상이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진흥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담은 행보였다. 지난 1964년 제1회 무역의날 행사와 1989년 제26회 행사에 대통령이 불참한 것도 해외 순방 일정과 겹쳤기 때문이다. 해외 순방으로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한 것을 빼면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무역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불참하는 대통령이 됐다. 탄핵소추가 제기된 ‘식물대통령’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수출탑 수상 기업들의 중량감도 예전 같지 않았다. 최고 금액을 기록한 곳은 한화토탈로 ‘50억불탑’을 수상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가 150억불탑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삼성전자가 750억불 수출탑을 받았던 것과 비교해 격세지감이다.올해 100억불 이상 수출탑 수상기업이 없는 것은 14년만에 처음이며, 실제로 올해 수상기업 명단에서 삼성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주요 대기업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58년만에 처음으로 2년 연속 수출 감소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출탑 수상업체 수’도 1209개로 전년(1328개)보다 9% 가량 줄어들었다. 무역의날 수출탑은 신청 기업을 대상으로 선정하며, 수상 기업은 동일한 수출탑을 2회 이상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그만큼 한국경제가 위기란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내일’도 밝지 못하다. 내년 무역의날 행사 전망도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글로벌 보호무역이 강화되면서 수출 회복 속도가 더딜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소속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무역규모가 9010억달러를 기록한 뒤, 내년에는 9500억달러로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다. 지난 2011년 12월 5일 ‘무역 1조달러 달성’을 기념해 무역의날 기념일을 당초 11월 30일에서 12월 5일로 변경했지만, 그 이후로 한 번도 1조달러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념일은 바꾼 게 무색하게 된 상황이다.

김인호 무역협회 회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우리 무역은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제는 새로운 성장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면서 “수출 규모의 양적인 확대도 중요하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수출의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