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흑인 대통령의 역설’에 갇혔다. 2008년 11월 건국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 흑인 사회는 오바마의 당선에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고 그와 함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흑백 미국은 없다. 미합중국만 있을 뿐이다”라는 오바마의 연설이 실현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중간층 흑인가구 자산은 대공황 이래 최악으로 추락했고, 흑인 범죄율은 더 높아졌다. 여기에 지난 8월 퍼거슨 시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에 10대 흑인 소년 사망하면서 흑인 사회는 분노했다.
미국은 흑인 대통령 재임기간 흑인들이 더 살기 힘들어졌다는 ‘모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열혈 지지층이 흑인이라는 ‘역설’에 휩쌓여 있다.
▶오바마 그늘, 흑인사회의 명암=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난 13일 “오바마 집권 하에서 미국내 흑인의 부(富)가 대공황 이래 어떤 대통령 재임기간보가 가장 크게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비(非)백인 중간층 가구의 순자산은 1만8100달러(1940만원)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20% 줄었다. 반면 백인 순자산은 14만2000달러(1억5216만원)로 1% 늘었다. 2009년 백인 가구는 흑인보다 7배더 부유해졌고, 그 차이는 더 벌어져 현재 8배에 이른다. FT는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흑인들은 오바마 집권 시기 더 열악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흑인 범죄율은 더 높아졌다. 1960년대 인구 10만명당 1313명이던 흑인 수감자 숫자는 2010년 4347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이 없었다면 흑인들의 고통은 더 심해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사 지원제도)와 장기 실업수당을 관철시켰다. 이는 흑인에 불균형하게 도움을 주는 제도들이다.
▶흑인사회가 좇는 오바마 신기루=미국 흑인의 ‘어메리칸 드림’은 깨졌지만 흑인들은 여전히 오바마 열혈팬을 자처하고 있다. 공화당 티파티가 오바마를 더 거세게 비방하는 만큼, 흑인들의 오바마 지지는 더 열성적이 됐다.
이에 대해 FT는 “롤모델로서의 오바마 효과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백인 사회는 1980년대 유명 시트콤 ‘코스비 가족’을 제외하고 흑인 가정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데, 버락과 미셸 오바마가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흑인 사회는 오바마 부부를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FT는 “대부분의 유권자는 그들의 삶,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영향을 주는 대통령을 뽑지만 이것이 통하지 않는 시대도 있다”며 “적어도 오바마 재임 기간에는 흑인들의 통찰력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예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