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공급 vs 주택바우처

수백만 근로자 내집마련 꿈 이뤘지만 빈곤층 몰리며 범죄등 사회문제 야기 노후화 등으로 관리에 어려움도 많아 공공주택 140만가구 정점으로 감소세

30년 검토 수요위주 ‘바우처 프로그램’ 공공주택 건설보다 비용 27%나 저렴 저예산으로 다양한 지원 가능 큰 효과 재정부담 커 한국도 단계적 도입 필요

<美 주택시장서 배운다 - 3> ‘원 스트라이크 퇴거’…저소득층 주거단지 건강을 되찾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공공주택(public housing)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구를 위한 주거 지원 수단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왔다. 그만큼 역사가 길고 또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공공주택은 우리의 영구임대주택과 유사한 형태를 띠며, 원칙적으로 건물이 존재하는 한 민간에 매각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되지 않는다.

공공주택 프로그램은 1930년대 대공황 후 뉴딜 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1937년에 시작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으로 건설됐다. 연방정부는 6년간 총 81만호의 공공주택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의욕적인 계획을 세웠다.

실제 건설은 목표에 못 미쳤지만, 공공주택 건설은 전후 주택 시장 재건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연방정부의 예산은 공공주택을 새로 짓는 데에 사용하기보다는 기존 공공주택의 개량과 재개발에 대부분 투입됐다. 그 결과, 공공주택 전체 호수는 1994년 140만호를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2008년에는 최고치 대비 19%에 해당하는 27만호가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부의 자가 보유 촉진책에 힘입어 수백만 도시 근로자가 큰 초기 부담 없이 내 집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공공주택 거주 가구의 소득 수준은 점차 낮아졌다. 빈곤층이 집중되면서 범죄ㆍ약물중독 등 여러 가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동반됐다. 또 초기 지어진 공공주택은 민간부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된 정부의 건설 단가 때문에 다른 민간주택에 비해 더 조밀하고 주택의 물리적 상태도 좋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물리적 상태가 열악한 상태에서 출발한 공공주택은 수십년간의 불충분한 시설 개량과 운영경비 지원이 더해지면서 노후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美 주택시장서 배운다 - 3> ‘원 스트라이크 퇴거’…저소득층 주거단지 건강을 되찾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미국의 공공주택 프로그램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실패한 사업’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이런 공급 위주의 주거 보조 프로그램은 ‘주택바우처’와 같은 수요 위주의 지원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미국 사회에서 주택바우처가 도입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37년 공공주택법 제정 이래, 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주택바우처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되고 논의됐지만, 실제 연방정부의 프로그램으로 정식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들어와서다. 그만큼 제도 도입에 따른 예산 확보와 전달 체계 문제에 대한 검증 작업이 오랫동안 진행된 것이다.

<美 주택시장서 배운다 - 3> ‘원 스트라이크 퇴거’…저소득층 주거단지 건강을 되찾다

일반적으로 주택바우처는 공공주택 프로그램에 비해 보다 적은 예산으로 무주택 저소득 가구가 다양한 주택과 지역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고, 수급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한 회계부서 분석에 따르면, 가구당 소요되는 비용(예산)이 바우처가 공공주택 건설보다 27%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임차인이 바우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원하는 주택에 항상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우처를 성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정한 임대료 상한을 넘지 않는 주택이 확보돼야 하고, 해당 주택이 정부가 요구하는 물리적 시설 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집주인이 바우처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1974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바우처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구의 주거 지원 수단으로 급속하게 확대됐다. 주택도시부 통계에 따르면, 1976년 약 10만명 남짓이었던 수급자가 2009년에는 150만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주택도시부의 주거 보조 프로그램에서 바우처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어나, 1993년 34%에서 2008년에는 42%로 늘어났다. 1990년대 초반부터 공공주택 프로젝트에 근거한 주거 보조 프로그램 수혜자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바우처 수급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집이 없는 도시 저소득 가구에 공공주택만큼 확실한 안식처는 없다. 공공이 소유하고 운영함으로써 장기간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주택은 1990년대 이후 연방정부의 ‘HOPE Ⅵ’라는 현대화 프로그램을 통해 시설이 대부분 개선됐을 뿐만 아니라 ‘원 스트라이크 퇴거’ 정책이 시행되면서 사회 병리 현상도 상당 부분 완화됐다. 미국 사회에서 공공주택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단순한 물리적 시설 개선을 넘어 임차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공공주택의 관리와 운영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과거 ‘주인 없는’ 공공주택이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입주민이 ‘실제 주인이 되는’ 공공주택의 미래는 분명 밝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주택 건설과 함께 주거복지 프로그램 다양화의 일환으로 주택바우처 제도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바우처 제도의 도입과 시행은 그동안의 공급 위주의 주거복지 정책에서 수요자 중심 주거복지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또한 중앙집중적 주거복지 정책에서 지방분권적 주거복지 정책으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급 위주든, 수요자 위주이든 이들 정책에는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다. ‘중용의 미덕’이 중요하다 하겠다. 공급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공공주택 확보는 필수적이며, 이를 보완하는 정책 대안으로 수요자 중심의 바우처 제도 도입은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다만 바우처 제도가 일단 도입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전달 체계의 효율성을 도모하면서 선별적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진현환 국토교통부 국장/jhh324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