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허연회ㆍ윤현종 기자] 국내 공기업들이 한 해동안 번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태로 전락했다.

2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전력,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석유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광물자원공사, 대한석탄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등 9개 기관은 지난해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이들 9개 기관에 한국가스공사까지 더한 모두 10개 기관은 올해 만기도래 채권이 38조5000억원에 달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영업활동, 현금성 자산으로 창출 가능한 자금이 6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는 원리금의 상환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LH, 한국전력, 석유공사, 가스공사, 대한석탄공사, 광물자원공사, 수자원공사, 도로공사, 철도공사, 예금보험공사, 한국장학재단, 철도시설공단 등의 하루 이자는 무려 214억원에 달한다. 또 이들 12개 기업은 2011년 12조7620억원, 2012년 8조2986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2년간 적자만 21조원을 넘겼다.

12개 공기업이 지난 5년간 지출한 이자비용은 28조9482억원에 달한다.

2008년 3조7331억원이던 12개 공기업의 이자비용은 2009년 4조7367억원, 2010년 6조818억원, 2011년 6조5875억원, 지난해 7조8092억원으로 증가했다.

한전의 경우 지난해 이자비용으로 지출한 금액만 2조3443억원이다. 금융성 부채에 대한 이자로 매일 64억2000만원을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도로공사와 가스공사, LH, 예금보험공사도 하루에 27억9000만원, 23억5000만원, 19억5000만원, 16억9000만원씩의 이자를 내고 있다.

이렇게 부실 공기업들이 이런 상황에까지 놓이게 된 것은 영업활동에서 창출할 수 있는 이익의 범위를 넘어선 무리한 투자 진행 때문이다. 무리한 투자의 배경에는 4대강 등 대형 사업과 공공요금 인상 억제 등 정부의 규제 일관도 정책이 가장 큰 이유다.

감사원이 올해 5월 부채 규모 등에 근거해 주요 9개 공기업의 2007∼2011년 금융부채 증감 원인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전체 금융부채 증가액 115조2000억원의 52%인 60조원이 정부의 정책사업 수행과 공공요금 통제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몇년간 정부의 정책사업 수행으로 부채가 늘어난 가장 대표적인 공기업은 한국수자원공사다. 2008년 19.6%였던 수공의 부채비율은 2012년 122.6%로 폭증했다.

예산정책처는 수공이 4대강 사업비와 경인아라뱃길 투자비를 차입금으로 조달하면서2008년 1조3898억원이던 금융부채는 2012년 11조8696억원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한전은 정부의 전기료 인상 억제로 만성적인 적자를 보면서 빚이 불어난 경우다.

2000년대 중반 유가 상승으로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물가 인상 우려로 전기요금 인상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 결과 100% 수준을 유지하던 한전의 원가보상률은 2006년 이후 하락세를 이어가 2008년에는 77.7%까지 내려갔다. 당연히 한전의 적자 폭이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영향으로 한전의 부채비율은 2008년 49.1%에서 2012년 133.2%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부채는 25조9292억원에서 95조886억원으로 급증했다.

최근 10년간 고속도로 건설비로 6조6000억원 가량을 쏟아부었다가 예측 대비 도로 이용률이 39.4%에 그쳐 빚더미에 앉은 한국도로공사나 취업 후 상환학자금(ICL) 사업을 담당하면서 채권 발행으로 대출 재원을 조달한 한국장학재단도 정부 사업 대행으로 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사례다.

한편 자체 사업 실패로 빚을 떠안은 경우도 있다. 한국철도공사는 올해 4월 용산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부채가 2조2000억원 늘고 자본이 4조7000억원 감소하기도 했다.

한국철도공사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244.2%에서 올해 말 445.1%로 200.9%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부채의 발생 원인이 달라 부채를 효율적으로 감축하려면 기관별 분석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다음달 중순께 최근 5년간 부채 급증 공기업 12곳을 선정해 부채 증가 규모와 내용을 사업·성질별로 분석해 발표할 계획이다.

민주당 이낙연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은 “정부가 보증한다는 이유로 낮은 금리로 사실상 무한정 자금을 조달하는 공기업들이 그만큼의 감시·감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공공기관의 적자는 결국 국민의 혈세로 보전해야 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가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