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나만 봐” 여성 편력·가스라이팅 일삼는 나쁜 남자, 말러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얀 파도가 밀려드는 끝도 없는 바닷가. 서래를 잃은 해준이 모래사장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 비극처럼 하프 선율이 시작된다. 그 위로 벨벳 같은 현악기가 미끄러지며 잡히지도, 잡을수도 없는 사랑을 그린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흐르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이다.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했어요.” 훗날 말러의 아내가 되는 19살 연하의 알마 쉰들러는 연인이 보내온 ‘아다지에토’의 초안 악보를 받아들고 이렇게 말했다. 알마는 ‘무언의 세레나데’이자 ‘강렬한 구애’였던 편지의 속뜻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끊임없이 상승하는 미완성의 멜로디는 ‘도달하지 못하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더 필사적이었던 말러의 사랑은 ‘구원’을 향해 있었다.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노년의 작곡가가 아름다운 소년에게 집착할 때, 이 음악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는
2026.03.15 08:00
“164cm 이하만 모십니다”…관객이 믿는 순간, 인형은 생명이 된다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태평양 한가운데, 깊고 어둔 하늘과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바다 위. 숨 쉬는 존재라곤 인간 하나와 짐승 셋 뿐이다. 가장 위협적인 건 벵골 호랑이다. 그르릉, 크륵, 후웁! 격렬히 들썩이는 몸통에 쩍 벌어진 입, 살기를 품은 듯한 눈빛에 등골이 오싹하다. 방심은 금물.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금세 저 녀석의 사냥감이 되고 만다. 설상가상 굶주린 하이에나가 오랑우탄을 물어뜯어 집어 삼키니 인간에게 남은 건 공포와 두려움 뿐이다. 연극 ‘라이프 오브 파이’(부산 드림씨어터)다. “처음엔 맨땅에 헤딩이었죠.” 250㎏의 벵골 호랑이는 15㎏의 플라스타조트(plastazote·저밀도 폴리에틸렌을 가공해 가볍고 탄성 좋은 재료)와 나무 골격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 명의 퍼펫티어(puppeteer·인형을 다루는 배우)의 몸에 얹어진 모형 호랑이. 삼위일체가 돼야 하는데, 벵골 호랑이와 세 명의 인간이 하나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명필 ‘라이프 오브 파
2026.03.08 08:00
“서울 배경 작품에 백인 배우라니~”…때아닌 ‘어햅’ 캐스팅 논란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시아계 공동체가 느끼는 배신감은 깊고 실재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브로드웨이 아시아계 배우 BD 웡) 지난해 7월, ‘뮤지컬 본토’이자 공연계 ‘자본주의 상징‘인 브로드웨이에선 엄청난 트라우마로 몸살을 앓았다. 그 해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 시상식인 ’토니 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을 차지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버전‘인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 때문이다. 당시 제작진은 “주인공 대런 크리스에 이어 앤드류 바스 펠드먼을 올리버 역으로 캐스팅했다”고 발표, 미국 공연계에 유례없는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른바 ‘화이트 워싱’ 논란이다. 연극 ‘버터플라이’(1988)로 토니상을 받은 아시아계 배우 BD 웡은 “(배우 교체라는) 이러한 전환은 슬프게도 이 작품(‘어쩌면 해피엔딩’)이 우리 공동체에 선사한 인정과 축하를 무효로 만든다”고 말했
2026.03.05 16:27
‘전라, 피 칠갑’ 20만원 주고 산 ‘합법적 관음증’…광기의 도파민 폭발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워져라, 사라져라, 저주받은 점이여!” 피 칠갑한 맥베스가 계단을 질주한다. 언어가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긴장과 고통. 이성을 잃고 던컨왕을 죽이고 만 맥베스의 눈엔 두려움이 가득하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핏물이 잦아들지 않는다. 욕조에서 전라의 몸을 강박적으로 씻어내는 맥베스 부인의 광기가 어두컴컴한 공간을 메운다. 욕망의 화신을 마주하고 선 관객들의 살갗마저 시뻘겋게 물든다. 이쯤 하면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다. 지난해 8월 시작해 오픈런(폐막일을 정해두지 않고 이어가는 공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영국의 창작 집단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모어(Sleep No More)’(옛 대한극장)다. 이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를 히치콕 스타일의 ‘누아르 서스펜스’로 재구성한 논버벌(Non-verbal) 퍼포먼스다. 단 한 줄의 대사도 대화도 없지만, 공연은 압도적 몰입감으로 세계 공연계에 충격을 안겼다. 한국에선 250억원의 ‘자본의 힘’을 등에
2026.03.01 08:03
250억원의 기적…대한극장은 어떻게 1930년대 스코틀랜드가 됐을까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2003년 런던 초연, 2011년 뉴욕 진출 누적 관객 200만 명, 2016년 상하이 진출 누적 관객 65만 명. 지난 23년간 세계 주요 도시를 발칵 뒤집어 놓은 ‘슬립 노모어’가 선택한 서울은 명실상부 역대 최대, 최고 규모를 자랑한다. 제작비만 해도 무려 250억원. 막대한 자본은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심장인 충무로 대한극장을 1930년대 스코틀랜드로 되살렸다. 이머시브 공연인 ‘슬립 노모어(Sleep No More)’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Macbeth)를 히치콕 스타일의 ‘누아르 서스펜스’로 재구성한 논버벌(Non-verbal) 퍼포먼스다. 관객은 가만히 앉아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웅장한 규모의 7층 짜리 공간을 걷고 뛰며 공연을 만난다. 창작진은 이미 제작 2년 6개월 전부터 대한극장 건물을 서울 공연의 공간으로 낙점했으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바렛 연출가는 “각종 인허가 절차가 필요했다”며 “에스컬레이터 같은 금속 구조물을
2026.03.01 08:00
채식주의자가 ‘고(古)음악’을 질색하는 이유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지막 한 꼬집, 셰프의 ‘한 수’는 여기에서 나온다. 누구나의 입맛을 기어이 훔쳐내고야 마는 최후의 킥이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세상이 있다. 고음악은 어쩐지 마지막 간을 하지 않고 내온, 슴슴한 요리 같다. 혀끝을 아리게 만드는 ‘도파민 범벅’의 마라탕을 닮은 거대 교향곡이나 K-팝과 영 딴판이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은 “고음악은 유기농 같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며 순수한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고 했다. 자극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간이 빠진 음식’ 같은 이 음악은 어딘지 특별하다. 무해한 청정지대에 머무는 기분이 들어서다. 서기 500년경(중세)부터 바흐가 사망한 1750년까지…. 고음악은 단순히 ‘오래된 음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음악은 ‘서양음악의 근간’을 지칭한다. 여기에 지금은 그 의미가 더 확장됐다. 작곡가가 곡을 썼던 당시의 철학, 악기, 연주법을 복원해 음악 본연의 목소리를 현재로 소환하는 음악을 뜻하게 됐다. ‘현대
2026.02.19 14:30
“이건 배신이지~”…‘어햅’ 캐스팅에 아시아계 배우들 발끈한 이유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시아계 공동체가 느끼는 배신감은 깊고 실재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브로드웨이 아시아계 배우 BD 웡) 지난해 7월, ‘뮤지컬 본토’이자 공연계 ‘자본주의 상징‘인 브로드웨이에선 엄청난 트라우마로 몸살을 앓았다. 그 해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 시상식인 ’토니 어워즈‘에서 무려 6관왕을 차지한 한국의 창작 뮤지컬의 ’브로드웨이 버전‘인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ending)‘ 때문이다. 당시 제작진은 “주인공 대런 크리스에 이어 앤드류 바스 펠드먼을 올리버 역으로 캐스팅했다”고 발표, 미국 공연계에 유례없는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이른바 ‘화이트 워싱’ 논란이다. 연극 ‘버터플라이’(1988)로 토니상을 받은 아시아계 배우 BD 웡은 “(배우 교체라는) 이러한 전환은 슬프게도 이 작품(‘어쩌면 해피엔딩’)이 우리 공동체에 선사한 인정과 축하를 무효로 만든다”고 말했
2026.02.15 08:00
채식주의자는 왜 ‘고(古)음악’을 싫어할까? [백스테이지]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마지막 한 꼬집, 셰프의 ‘한 수’는 여기에서 나온다. 누구나의 입맛을 기어이 훔쳐내고야 마는 최후의 킥이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세상이 있다. 고음악은 어쩐지 마지막 간을 하지 않고 내온, 슴슴한 요리 같다. 혀끝을 아리게 만드는 ‘도파민 범벅’의 마라탕을 닮은 거대 교향곡이나 K-팝과 영 딴판이다.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은식은 “고음악은 유기농 같다”며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며 순수한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고 했다. 자극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간이 빠진 음식’ 같은 이 음악은 어딘지 특별하다. 무해한 청정지대에 머무는 기분이 들어서다. 서기 500년경(중세)부터 바흐가 사망한 1750년까지…. 고음악은 단순히 ‘오래된 음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고음악은 ‘서양음악의 근간’을 지칭한다. 여기에 지금은 그 의미가 더 확장됐다. 작곡가가 곡을 썼던 당시의 철학, 악기, 연주법을 복원해 음악 본연의 목소리를 현재로 소환하는 음악을 뜻하게 됐다. ‘현대
2026.02.01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