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직무정지 처분을 사실상 보류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로 선회한 것은 다행이다. 24일 윤 대통령이 중재자로 나선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요청을 받고 전공의 면허정지와 관련, “당과 협의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강경대응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의료인과 건설적 협의체를 구성해 대화를 추진해 달라”고도 했는데, 이제 의료인들도 화답해야 한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의료공백을 더 끌고 가선 안된다.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주장에서 반 보라도 내디뎌 건설적 대화를 진전시켜야 한다.
정부는 당초 26일부터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에 나설 예정이었다. 의대 교수들도 25일 사직서 제출로 맞서 그 어느 때 보다 전운이 짙다. 교수들이 52시간 근로시간을 준수하고 다음달부턴 중증·응급환자 중심 진료로 외래를 보지 않겠다고 해 환자 불편과 고통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 대화 의향을 서로 확인한 정도지만 극적인 분수령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려면 갈등의 본질인 의대 증원 숫자 2000명을 놓고 한치도 양보 않겠다고 맞서서는 곤란하다.
의대 증원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의사들의 주장은 국민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의료 공백의 고통을 참고 있는 것도 정부가 이번에 만큼은 의사 수를 확 늘려 진료받는 데 따른 불편과 낭비를 없애주길 바래서다. 필수·지역 의료 붕괴에 따른 폐해는 누구보다 의사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가 의대증원 배정을 비수도권에 집중한 이유다. 19년 전 의사수를 줄이지만 않았어도 2035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 수를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 의사 수는 2000년보다 더 줄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의사수가 충분하고 지방 거점 병원을 빅5수준으로 키운다면 지역 인재가 지역에 남을 공산이 크다. 지방살리기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의대 증원 2000명 대학 배정을 마쳐 쐐기를 박은 정부도 이해 당사자를 무시하고 독주하는 건 옳지 않다. 아직 각 대학 입시 요강 발표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증원 규모 확대 기조를 유지하되 교육 여건을 따져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는 의료현안에 대해 대화해왔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창구 하나 없었던 게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전공의, 의대생, 교수, 의협 등 주장도 제각각이다. 의협이 나서면 전공의들이 가세하는 식으로 주장을 관철시켜온 관행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다. 필수의료수가 인상 등 서로 일치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게 확인된 만큼 대화의 물꼬를 터 의료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